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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중 관세율 상당히 내려갈 것" 협상 촉구 베선트 장관 "미·중 관세, 지속 불가능, 상황 완화할 것" 백악관 "'트럼프 스피드'로 무역협상 진행"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분쟁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입구 찾기에 나섰다.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높은 관세가 낮아질 것이라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꽉 막힌 미중 무역 협상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트럼프 "중국산 관세 크게 낮아질 것"
22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폴 앳킨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취임 선서식을 마치고 기자들에게 "중국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상을 통해 중국산 제품의 최종 관세율이 현재 145%에서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며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복했다. 이어 그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매우 친절할 것"이라면서도 무역 합의가 있다면 관세가 크게 떨어지겠지만 제로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무역 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미국이 조건을 정할 것이라는 발언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겉으로는 강경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협상의 문을 열어놓겠다는 이중 신호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중국을 몰아붙이면서도, 글로벌 공급망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지 않으면서 정치적 압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앞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고관세가 지속 불가능하다며 미중 무역전쟁이 축소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한 투자자 행사에 참석해 "현재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금수 조치(trade embargo)를 취하고 있다"며 "현재의 상태가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의 긴장 완화 가능성이 "세계와 시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협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힘든 과정이 될 테지만 추후 합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같은 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거래를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있으며 공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교착 상태에 빠진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의 물꼬가 트이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계획을 공개한 첫날 중국에 부과한 관세율인 54% 수준에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공격이 본격화하기 전 양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생일을 맞아 6월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일본, 대미 관세협상 앞두고 '엔화 약세' 방어 고심
반면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엔화 약세 문제에 대한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최근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베선트 장관과의 회담에서 엔화 환율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며, 미국의 환율 개입 요구 가능성과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압력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가토 재무상은 22일 일본 국회에서 "베선트 장관과 환율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것임을 확인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에 대해서는 "시장 투기를 불러일으키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언급을 피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자국 수출 산업에 유리하도록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을 통해 부가가치세 및 수출 보조금과 함께 환율 조작을 8가지 "비관세 불공정 행위" 중 하나로 지목하며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지난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정정책담당상이 베선트 장관을 만났을 때 환율 문제는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으나, 일부 시장 관측통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무역 적자 해소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내세워 일본에 외환 시장 개입 등 무역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미·중 갈등 속 '중립 외교' 시험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외교적 시험대 올라있는 상황이다. 텡쿠 자프룰 압둘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부 장관은 고위급 무역 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무역 당국자들과 회담을 갖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말레이시아의 중립적 역할을 강조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은 말레이시아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을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회담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말레이시아산 대부분의 상품에 대해 24%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불공정하게 이용한다고 비난한 국가들을 겨냥한 광범위한 관세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에 이번 워싱턴 회담을 이끄는 자프룰 장관은 회담에서 아시아와 미국의 공급망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중립적 행위자로서 말레이시아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말레이시아가 양대 교역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정학 분석가 아스룰 하디 압둘라 사니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언급하며 "말레이시아와 아세안은 미국과 중국 모두 똑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지를 제시하며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과 손잡고 '반중 전선'에 합류하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21일 각국이 아시아 초강대국인 중국을 명시적으로 겨냥한 거래를 미국과 체결할 경우 "단호하고 호혜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미국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에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은 중국 공급망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제3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자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말레이시아는 이번 워싱턴 회담에서 미국의 압력과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립적 역할'을 강조하며 양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말레이시아의 외교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국 견제 정책 속에서 어떤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