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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적극 구애에도 ‘중립 외교’ 지킨 동남아, 미·중 갈등 새로운 ‘캐스팅 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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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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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선 환대, 이면에선 셈법 복잡
노골적 반미 연대엔 단호한 선 긋기
공급망·무역 질서에 미치는 영향 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4월 14일 베트남 국빈방문 환영식에서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중국 국무원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관세를 계기로 본격화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쳤다. 이들 동남아 국가는 표면적으로는 시 주석을 환대하면서도 ‘반미 연대 구축’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경제 둔화와 미국 수출 의존이라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균형을 택하는 모습이다.

전략적 선택에서 신중 모드

29일 외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달 14일 베트남 방문을 시작으로 이튿날엔 말레이시아를 찾았고, 18일 캄보디아에서 동남아 순방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는 4박 5일의 일정 동안 베트남과는 45건, 말레이시아와는 31건, 캄보디아와는 37건의 협력을 맺으면서 100건이 넘는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협력 분야는 공급망 안정화부터 핵심 광물 자원 협력, 국경 간 철도 연결 등 인프라 투자, 디지털 경제 및 인공지능(AI) 기술 교류, 상호 비자 면제 기간 연장(말레이시아) 등 다양했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시 주석의 동남아 순방은 중국을 향한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뤄졌다”며 “이는 직접 동남아 핵심 국가와 연대를 강화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하려는 전략적 행보”라고 해석했다.

시 주석 또한 각국 정상회담 직후 공개 발언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실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관세 전쟁에 승자는 없다”고 말했으며, 말레이시아에서는 “헤게모니와 보호주의에 반대한다”며 세계연합(UN) 중심 국제 질서와 개방형 세계 경제 구축을 역설했다. 이는 미국 일방주의에 맞서 중국의 다자주의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서 시 주석이 기대한 반미 연대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들 동남아 3개 국가는 중국의 노골적인 반미 움직임에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며 “다자무역 체제 지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지역 협력”, “국제법 존중” 등 원론적인 표현들로 공동성명을 채웠다. 이는 동남아 국가들이 오랜 시간 지켜 온 균형 외교 전략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남아 눈치 전략에 한·일 ‘반색’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 전략을 유지하는 상황은 한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많은 글로벌 제조업체가 중국을 떠나 동남아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해당 지역 국가들이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지켜야만 공급망 다변화에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환경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기업 입장에서 동남아는 이미 제2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주요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에 구축해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만약 현지 정부가 중국과 지나치게 밀착하게 되면, 이 같은 생산 네트워크에도 정치적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구조다. 동남아 국가들이 중립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미국, 중국 모두와 균형을 맞추는 상황에서만 지금과 같은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게 제조업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일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다수의 기업이 동남아를 전략적 대안으로 삼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외교적 긴장이 잦은 일본 입장에서는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는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동남아와 중국의 거리 두기가 필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동남아의 독자적인 외교 전략은 한일 양국에 경제적 안전판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미·중 협상에 결정적 변수로

나아가 이들 동남아 국가의 행보는 단순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선택은 미·중 간 무역 협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동남아는 공급망 대체지 또는 무역 우회로, 외교적 완충지대라는 다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미·중 간 협상력 균형 또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이번에 시진핑의 반미 연대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미국과의 경제·안보적 유대 관계를 중시하겠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베트남뿐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타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과의 무조건적 협력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 중 일부라도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다면, 대미 협상에서 중국의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동남아는 공급망 재편, 무역 루트, 글로벌 가치사슬 연결성 등 측면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존재로 평가받는다. 특히 반도체 및 전자제품, 섬유 등 주요 산업의 중간재 생산과 최종 조립 거점으로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남아 국가들을 잘 끌어안아야 중국 견제를 강화할 수 있고, 중국 입장에서는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과의 대결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동남아가 미·중 양국 모두에게 ‘캐스팅 보트’ 같은 존재가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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