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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주기 장기화, 일종의 무이자 차입 금감원, PG 정산금 관리 규제 추진 대규모 정산금 지연 사태 방지용 규제

금융감독원이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체의 정산대금 60% 이상을 외부 기관에 별도 관리하도록 자율 규제를 만든다. 지난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관련 법 개정이 늦어지자 자율 규제부터 마련해 관리·감독 기준점을 잡겠다는 취지다.
PG사 미정산금 전액 ‘별도관리’ 해야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PG업체의 정산대금 60% 이상을 별도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율 규제 초안을 PG업계에 공유했다. 자율 규제엔 PG사의 전체 정산 대금 중 최소 60%를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등의 방법으로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가 담겼다. 이 자율 규제가 시행되면 은행 혹은 보험사가 PG사의 정산 대금 절반 이상을 관리하게 되므로 정산 대금 유용 가능성이 줄어든다.
금감원은 초안에 대한 PG업계의 의견 수렴을 마쳤으며, 이를 토대로 자율 규제 최종안 내용과 발표 시기를 조율하는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율 규제 및 행정 지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PG사들이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소비자·소상공인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산 대금은 PG사가 잠시 보유하는 돈이다. 소비자가 온라인상에서 어떠한 물건을 구매하고 결제하면, 이 금액이 결제처로 곧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결제 서비스를 대행하는 PG사가 적게는 2~3일, 길게는 한 달 이상 돈을 보유했다가 수수료를 뗀 뒤 결제처로 넘긴다. PG사는 정해진 정산 기한 내에 대금을 결제처로 넘겨야 한다.

전금법 개정 늦어져 자율규제 마련
금융당국이 정산 대금 관련 자율 규제를 만든 건 지난해 티메프 사태가 정산 대금 미지급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간 티몬과 위메프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와 PG업을 겸했다. 두 업체는 수년간 자본 잠식 상태였는데, 입점 업체에 줘야 할 정산 대금을 유용하며 사업을 존속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산 대금 관리를 따로 규율한 제도는 없었다. 이 때문에 PG사가 정산 대금을 함부로 쓰더라도, 합법적인 용도 내에 사용하다 정산 기한에 맞춰 결제처에 지급한다면 문제 삼지 못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이러한 방식으로 부실 사업체를 연명하다 지난해 1조3,000억원가량의 정산 지연을 일으켰다.
티메프 사태가 터지고 여당과 금융위원회는 정산 대금 지연 재발을 막기 위한 법 개정에 착수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강민국 의원은 PG사가 정산 대금 전액을 외부 기관에 별도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담아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전금법 개정안은 반년 넘게 정무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금법 개정안이 당장 통과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 1년의 유예 기간이 있다.
이에 금감원은 제도 공백 기간에 PG사들의 정산 대금 유용과 추가적인 금융 사고를 막고자 자율 규제를 마련했다. 자율 규제와 행정 지도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금감원의 감독·검사 업무 기준점이 된다. PG사 입장에서도 사실상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신탁 혹은 지급보증보험 가입에 드는 비용을 고려해, 정산 대금 별도 관리 수준을 100%가 아닌 60% 수준으로 정했다. 소형 PG사들의 비용 부담을 고려한 연착륙 조치다.
대금정산주기 장기화 부작용에 정산 기한도 단축
이와 별도로 정부는 이커머스의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구매 확정 후 20일 이내로 하고 PG사도 당사자 간 약정기한 내 판매대금을 정산하도록 대규모유통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티메프 정산대금 미지급 사태에서 판매대금 정산 주기를 장기화해 내부에 상당 기간 자금을 묶어둔 건 일종의 자금조달(무이자 차입) 행태로, 배달 대행·숙박 예약 서비스 등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당초 정부는 티메프 사태 발생 직후인 지난 8월 온라인 플랫폼의 정산기한을 대형 유통업자(40~60일)보다 짧은 40일 이내로 단축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티몬·위메프를 제외한 대부분의 오픈마켓의 정산주기가 그보다 짧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산기한이 20일로 단축됐다.
현행법은 오프라인 대규모 유통업자에 대해서만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규정하고 있을 뿐, 이커머스·PG사에 대한 규제는 없다. PG사가 경영지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할 만한 감독 수단 역시 없는 상황이다. 이에 감독당국은 PG사가 경영지도기준 및 정산대금 별도 관리 의무 등을 미준수한 경우 시정요구→영업정지→등록취소 등 단계별 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관련 감독규정도 개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