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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발전소 묶어 5조원 '유동화' 추진 SK엔무브, 중복 상장 논란에 IPO 지연 실적 부진한 SK온도 투자금 상환 압박

SK이노베이션이 SK E&S가 운영하는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자산들을 묶어 유동화에 나선다. 이번 거래는 LNG 발전 자회사와 트레이딩, 해외 광구 등 밸류체인 전반을 포함해 최대 5조원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SK엔무브의 상장 지연과 SK온의 투자금 상환 부담이 겹치면서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동화 자산으로 나래·파주·여주 발전소 거론
2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발전, 트레이딩, 광구 등 LNG 밸류체인 전반의 자산을 묶어 유동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부 투자자들과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한 초기 단계로 이르면 상반기 중 거래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유동화 자산으로는 나래에너지서비스(지분율 100%), 파주에너지서비스(51%), 여주에너지서비스(100%) 등 자회사들이 우선 거론된다. LNG를 연료로 활용한 발전사업을 하는 해당 자회사들은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이 6,000억원을 넘는다.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해외 LNG 광구와 LNG 도입 및 트레이딩 사업 등 LNG 밸류체인 전반이 유동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SK이노베이션 E&S의 LNG 트레이딩 자회사인 프리즘에너지가 해외 자원 개발, LNG 무역 등을 영위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합병한 SK E&S의 사업 상당 부분이 유동화 대상에 놓이게 된다. 거래 구조나 조건은 유동적이지만, 과거 SK E&S가 도시가스 자회사 7곳을 묶어 KKR에 3조원대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은 유동화를 통해 최대 5조원을 조달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화학 및 배터리 사업 부진에 SK엔무브와 SK온 재무적투자자(FI) 자금 상환 고민도 크다.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업황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재무구조 개선 고민은 사실상 일단락된다. SK그룹과 거래한 이력이 있고 인프라 투자에 전문성을 가진 KKR과 브룩필드가 유력한 투자자로 꼽히고 있다. 단 거래 규모가 크고 원매자군은 좁은 만큼 실제 거래 규모는 SK이노베이션의 희망가보다 낮아질 것이란 평가도 있다.

최근에는 원전 1기 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 추진
이번에 유동화를 추진 중인 SK E&S는 SK이노베이션 내에서도 핵심적이고 우량한 자회사로 평가받는다. SK E&S는 LNG 발전소, 열병합발전소 등 다양한 에너지 인프라를 운영하며 매년 높은 영업이익과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국가스공사에서 LNG를 공급받는 대신, 직접 LNG를 수입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해 다른 발전소 대비 높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신규 발전소 건설에도 적극 나서는 등 신재생에너지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지난 16일에는 SK E&S가 덴마크 에너지 투자사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CIP)와 함께 조성한 전남해상풍력 1단지가 전라남도 신안 자은도 해역에서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해당 사업은 국내 민간이 단독 주도한 해상풍력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전남 신안군 연안에서 9km 떨어진 수심 10~20m 해역에 고정식 풍력발전기 10기(96㎿)를 설하는 사업이다. 생산능력은 연간 3억107만kWh로 약 9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담보 없이 사업성과 미래 수익만을 기반으로 한 비소구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SK이E&S와 CIP가 각각 51%, 49%의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전남해상풍력㈜은 2017년 발전사업 허가를 시작으로, 2022년 공유수면 점용 허가를 거쳐 2023년 육·해상 공사에 착수했다. 이어 올해 초 시운전을 마치고 전력 생산에 들어갔다. SK E&S는 이번 1단지에 이어 2027년까지 2단지(399㎿), 3단지(399㎿)를 추가로 착공해 총 900㎿급 해상풍력 단지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완공 시 국내 원자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 규모다.
2026년 IPO 약속한 SK온, 출범 이후 적자 누적
SK이노베이션이 자금 마련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거래소가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SK엔무브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사업 자회사인 SK엔무브는 2018년에 상장이 무산된 이후 7년 만인 올해 재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거래소는 지난달 상장 예비 심사 전 사전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SK엔무브의 중복 상장과 관련해 주주 보호 방안 수립을 요구했다. SK엔무브 지분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70%, IMM크레딧솔루션이 30%를 갖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이 이미 증시에 상장돼 있어 중복 상장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에 자금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상장 기한 때문이다. SK온은 2022년 이후 국내와 해외 투자자 컨소시엄으로부터 각각 1조2,000억원, 1조6,000억원을 조달하면서 2026년까지 상장하기로 약속했다. 이 시점까지 일정 수익률을 충족하지 못하면 SK이노베이션은 투자자인 MBK파트너스, 한투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에 투자금을 상환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SK온 지분에 대해 동반 매도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SK온이 내년 중 상장에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온은 2021년 출범 이후 지난해 3분기를 제외하고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시설 투자에 투입한 비용은 약 20조원으로 재무 상황이 좋지 않고 전기차 수요 둔화로 기대하는 만큼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2026년까지 IPO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도 SK온 지분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SK온은 자금 조달 계약 당시 2028년까지 상장을 연기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