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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철강·알루미늄 관세 50%로 인상 EU, 1,000억 달러 규모 美 제품 보복관세 준비 대두·가금류·오토바이 등 정치적 타깃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맞서 보복 조치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대한 50% 관세를 포함한 관세 위협을 이행할 경우 EU도 즉각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교가에서는 EU의 보복 구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기반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전략적 타격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U "상호 수용 해결책 없으면 대응"
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2일 당초 계획했던 25%에서 50%로 인상된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해 강력하게 유감을 표명하며, 이번 조치가 무역 갈등 해결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같은 날 EU 집행위 대변인 올로프 길은 브뤼셀에서 기자들에게 "상호 수용 가능한 해결책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기존 및 가능한 추가 EU 대응책은 상황에 따라 7월 14일 또는 그 이전에 자동으로 발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EU 집행위는 EU의 이익을 수호하고 우리 노동자, 소비자,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항상 분명히 해 왔다"고 강조했다.
현재 EU는 트럼프 대통령이 블록의 거의 모든 수입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한 7월 9일 마감 시한 전에 미국과의 협상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무역에 불공정하다고 맹비난하면서 EU가 상품 무역 흑자를 줄이고 부가가치세와 같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낮출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금속과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연기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보다 광범위한 무역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허용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EU도 자체 대응책을 보류하기로 합의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2배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EU도 추가 관세를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보잉 항공기·미국산 차량에 보복 관세 검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불발 시 최대 1,000억 유로(약 157조4,000억원) 규모의 미국산 상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추가 보복 조치에는 미국 항공 제조 업체 보잉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항공우주 관련 제품은 EU에 대한 미국의 주력 수출 분야다. 뿐만 아니라 미국산 자동차, 버번을 포함한 공산품들도 대상에 포함돼 있다.
외교통상가에선 EU 집행위가 공개적으로 협상 불발에 대비한 플랜B 조치를 언급하는 것을 두고 EU와 미국의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EU 집행위의 이런 언급이 트럼프 행정부에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의도일 가능성도 있어서다. EU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예고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오는 7월 14일까지 90일 동안 유예한 데 맞춰 보복관세 부과를 90일 동안 유예한 상태다.

트럼프 아픈 곳만 골라 때리나, '레드 스테이트' 정밀 타격
또한 EU가 미국과의 협상에 여지를 남기면서도 보복 옵션을 구체화하고 있는 건 국제무역질서의 일방적 훼손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성격도 짙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EU가 꺼내든 보복 조치가 '전방위 보복'이 아닌 '정밀 타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 EU가 준비 중인 보복관세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텃밭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를 집중 타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EU 집행위가 작성한 문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EU는 미국산 수입품에 최대 25% 관세 부과를 고려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221억 유로(약 36조원)에 달한다. 폴리티코는 이 가운데 레드 스테이트 수출에 입힐 타격만 최대 135억 달러(약 19조원) 상당으로, 관세로 타격을 입을 피해액의 절반 이상이 레드 스테이트에 집중됐다고 짚었다. 폴리티코는 “EU의 대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공격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에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수동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논평했다.
EU의 관세부과 대상 1순위는 미국산 대두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콩 생산국이자 수출국인데, EU 관세는 이미 중국의 보복 조치, 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미국 대두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EU에 대한 미국 대두 수출의 82.5%는 미국 하원 의장인 공화당의 마이크 존슨 의원의 지역구인 루이지애나에서 나온다고 폴리티코는 짚었다.
EU는 또한 레드 스테이트로 분류되는 캔자스주와 네브래스카주의 쇠고기, 루이지애나주의 가금류, 미시간주의 자동차 부품, 플로리다주의 담배, 노스캐롤라이나주·조지아주·앨라배마주의 목재 제품을 관세 타겟으로 삼았다. 이에 더해 애리조나의 아이스크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손수건, 앨라배마의 전기 담요, 플로리다의 넥타이, 위스콘신의 세탁기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