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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학력 인재 넘치는데 일자리는 ‘전멸’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도 같은 처지 고용 창출 없는 교육은 ‘무용지물’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높은 교육 수준과 디지털 역량이 취업과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해 온 선진국들이 있다. 한국,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가 그들인데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고학력 인적자원과 일자리 사이의 불균형에 빠져 있다. 교육받은 인재들이 계속 배출되는데 경제는 그들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포함 일부 선진국, ‘고학력 일자리 실종’
그냥 숫자만 보면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일자리-실업자 비율(vacancy-to-unemployed ratio)은 1.2로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최근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일자리가 구직자들을 지속적으로 앞서고 있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뒤처진다. 게다가 한국은 일자리 숫자가 실업자 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급격한 일자리 수 증가는 주로 이민자들이 경제를 떠받치는 나라들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는 아니다.

주: 2015년 1분기(하늘색), 2024년 2분기(청색), 코로나19 이후 최고점(2020년 1분기~2024년 2분기 중)(적색) /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폴란드,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핀란드, 헝가리, 라트비아, 네덜란드, 벨기에, 에스토니아, 스웨덴, 호주, 룩셈부르크, 평균, 한국, 오스트리아, 칠레, 스위스, 캐나다, 독일, 노르웨이, 독일, 미국, 일본(좌측부터)
2010~2024년 기간 이들 국가의 교육열은 뜨거웠다. 이탈리아의 고등교육 이수율(tertiary attainment)은 19%에서 28%로 올랐고 프랑스는 52%에 이르렀다. 여기에 한국은 55%를 찍었다. 문제는 일자리가 그만큼 따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GDP) 성장 속에서도 고용률이 바닥에 머물고 프랑스는 순 고용자 수는 증가했지만 대학원 졸업자 수준의 일자리가 감소했다. 고학력 졸업자의 과잉 공급이 경제적 기회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그냥 쉬는 청년’ 28%
졸업장이 원하는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자 청년층은 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교육, 취업 또는 훈련에 종사하지 않는 청년 인구(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비율이 2023년에 28%까지 치솟았다. 한국과 프랑스도 14~18%에 이른다. 일본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사토리 세대(Satori Generation, 거시 경제 원인으로 야망과 희망을 포기한 젊은 일본인)의 증가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음식·숙박업, 운수업, 돌봄 서비스업 등에는 자리가 있지만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모두 저임금에 고용 기간이 짧고 정신 건강 위험에 시달리는 직종들이다. 이탈리아 음식·숙박업 노동자들의 62%가 6개월 이하 근로계약하에 일하고 있고 한국의 젊은 소매업 종사자 중 절반은 사회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프랑스 돌봄 노동자들은 불규칙한 노동 시간을 감수하며 일본 간병인들은 어마어마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주: 근로자 비율(%)(Y축), 단기 계약(노랑), 교대 근무(회색), 정신 건강 위험(청색) / 일자리 전체 평균, 육아, 청소 도우미, 간호사 및 조산사, 개인 돌봄, 운수업, 웨이터 및 바텐더, 운송 및 창고업, 외식업(좌측부터)
근무 여건이 열악한 일자리는 주로 여성과 이주민으로 채워진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주민들이 음식·숙박업에 몰려 있고 한국과 프랑스 돌봄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여성 노동 참여율을 높이고 이민자 의존율을 낮추는 것이 해당 분야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러자면 세제와 육아, 고용 안정성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아예 이민자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한국과 일본처럼 문화적 동질성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쉽지 않다.
노동 수요 간과한 채 ‘교육·훈련’만 강조
어차피 2035년에는 생산 가능 인구가 10~17%까지 줄어들 테니 고학력 인구 과잉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수요가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이다. 기업들은 시장 축소를 감안해 이미 투자를 줄이고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의 고정 자본 형성(fixed capital formation, 고정 자산에 대한 신규 투자)이 독일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낮은 것을 보면 만족할 만한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 수요 측면을 간과한 채 진행되는 공급 위주 노동 정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디지털 교육과정을 수료한 교육생의 40%가 9개월 후에도 여전히 실업 상태에 있으며 프랑스도 교육 훈련에 매년 20억 유로를 쏟아붓고 있지만 실업률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고용 관련 기관인 헬로 워크 센터(Hello Work centres)에는 전문직보다는 저임금 돌봄 일자리만 가득하다.
한국, 정규직·계약직 ‘임금 격차 해소’부터
결국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노동 수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 정책 당국은 공공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가 친환경 및 사회 기반 시설 정부 지출을 통해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한국같이 노동력이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이분화된 국가는 양쪽의 임금 차이를 줄이면 보다 안정적인 고용이 이뤄질 수 있다. 일본은 아직도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체계로 인해 신입 직원의 보수가 억눌리는 경향이 있으니 세금 경감 등을 통해 이를 해결해 주면 청년층의 동기부여가 살아날 것이다.
국가별로 보면 이탈리아는 연구개발 세액 공제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고 침체된 남부 지역에 투자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청년 고용을 위한 보조금이 장기적인 고용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점점 벌어지는 계약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본은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에 앞장서는 기업을 후원하고 진입 단계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교육을 통해 글로벌 경쟁 환경을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발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사실을 말한다면 교육은 생산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있을 때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일자리 창출 문제에 손을 놓고 교육과 훈련만 강조한다면 고학력 청년 세대의 절망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원문의 저자는 오르세타 카우사(Orsetta Caus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 이코노미스트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When upskilling is good but not enough: Understanding labour shortages through a job-quality len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