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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인프라 투자, ‘중국 패권’ 벗어나 ‘다각화’ 추구 스리랑카, 인도·아랍에미리트와 ‘협력 강화’ 몰디브, 모리셔스, 케냐도 합류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한동안 인도양은 남중국해나 대만 해협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힘겨루기에서 벗어나 있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스리랑카가 인프라 투자에 대한 중국의 패권을 거부하면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스리랑카는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를 떠나 파트너십 다변화와 동맹 구축에 나섰다.

스리랑카, ‘중국 굴레’ 벗어나 ‘파트너십 다변화’
지난 4월 스리랑카는 인도 및 아랍에미리트와 콜롬보, 트린코말리(Trincomalee) 등 2개의 자국 항구를 공동 개발하는 데 동의했다. 서류상으로는 항만 개발이지만, 인도양을 더 이상 중국의 독무대로 놔둘 수 없다는 전략 선언이기도 했다.
스리랑카는 2005~2020년 기간 도로, 발전소, 항만 건설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120억 달러(약 16조6,000억원)를 융자받았다. 그중에는 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중국 기업에 99년간 임차권을 허용해 유명해진 함반토타(Hambantota)항도 포함돼 있는데 언론은 이를 ‘족쇄’라고 비판했다.

주: 중국(짙은 청색), 인도 및 아랍에미리트(청색)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다. 2022년이 되자 에너지 가격 급등과 관광 산업 불황으로 스리랑카가 파산 상태에 빠졌다. 외환 보유고가 5천만 달러(약 691억원) 아래로 내려가고 연료 부족으로 정전이 속출했으며 인플레이션은 고삐 풀린 듯 올랐다. 국민들은 한때 환영했던 중국의 투자를 덫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채무 면제를 망설이는 사이 인도가 식료품과 연료, 의약품에 대한 비상 지원금 40억 달러(약 5조5,000억원)를 들고 개입했다. 2023년 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이 30억 달러(약 4조1,500억원)의 복구 지원금까지 승인하자 스리랑카 정부는 다각화로 전략 방향을 틀었다.
인도 및 아랍에미리트와 항만 프로젝트 진행
스리랑카의 방향 전환은 두 개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귀결됐다. 콜롬보에서는 인도 기업 아다니 항만(Adani Ports)이 아부다비 항만(Abu Dhabi Ports)의 자금 및 기술 지원에 힘입어 신규 컨테이너 터미널에 대한 8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또 아시아 최고의 자연 항구로 평가되는 트린코말리는 걸프 지역 원유 및 천연가스를 남아시아 시장과 연결하는 에너지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
일대일로와 달리 이번에는 스리랑카가 프로젝트에 대한 지배 지분(controlling stake)을 갖고 ‘아다니’는 소수 지분만 보유한다. 아랍에미리트의 투자금은 ‘국가에 의한 자산 압류’(sovereign asset seizure)로부터도 보호된다. 계약 내용은 온라인상에 공개되고 국회의 검토를 거치며 환경 영향에 대한 해외 학계의 조사까지 받는다.
이제 중국도 과거와 같이 신속한 대출을 통한 일괄수주(turnkey)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이동 통신 인프라, 클라우드 컴퓨팅, 문화적 지원 등에 집중하고 있다. 이제 확장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새로운 항구 건설보다는 기술 및 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장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장학금, 판다 축제, 위안화 결재 등 한결 부드러워진 접근방식도 과거의 지배적인 모습을 버리고 분위기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비친다.
인도양 중국 패권 시대 ‘종료’
중국이 속도를 무기로 했다면 인도는 인내에 탁월하다. 스리랑카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인도의 지원은 시의적절한 만큼 효과적이었다. 2019년 스리랑카 국민의 인도에 대한 선호도는 23%에 불과했으나 작년 말 62%로 치솟았다. 반면 중국은 40%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다니’는 항만 건설을 넘어 친환경 에너지와 전력망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데, 일방적 의존이 아닌 상호 의존임을 강조해 스리랑카인의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주: 중국(짙은 청색), 인도(청색), 아랍에미리트(하늘색)
전략적으로도 중국을 압도한다. 통제권을 가진 항구로 인도를 에워싸려는 중국의 전략에 찬물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와 협력함으로써 운영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자금 부담을 던 것도 영리한 수였다. 남의 돈으로 지역의 전략적 자산에 대한 관리권을 얻은 셈이다.
아랍에미리트가 인도양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것도 상업적 목적과 전략적 의도를 아우른다. 아부다비 항만은 이번 투자를 통해 수단, 파키스탄에 이어 스리랑카에도 물류 거점을 마련했다. 걸프(Gulf) 지역 국가들의 해상 무역로가 확대되는 셈이다. 지분 투자 및 수익 분배 방식을 통해 수혜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철저한 중립성을 유지해 갈등의 여지를 차단한 것도 중국과 다른 점이다.
대중국 관계에서 다각화를 선택한 국가는 스리랑카만이 아니다. 몰디브, 모리셔스, 케냐 등도 일본,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새로운 방식의 투자를 논의하고 있다. 물론 중국 자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역 국가들의 배타적인 의존은 종말을 고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마니쉬 바이드(Manish Vaid) 옵서버 리서치 재단(Observer Research Foundation)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Redrawing the map of power in the Indian Ocean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