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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 타격 방식, 외교적 접근과 대비
중동 역내 패권 경쟁 격화 가능성
이란 위기로 CRINK 구도 붕괴 조짐

미국이 이란의 지하 핵시설 3곳에 초대형 폭탄과 미사일을 동원한 정밀 공습을 단행하며 외교 대신 무력으로 핵 개발 억제에 나섰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의 중동 내 위상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주변국들은 일제히 이란과의 거리두기 등 외교 전략을 재조정 중이다. 동시에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이 포함된 반미 진영의 한 축이 붕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를 글로벌 질서 재편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하 벙커 관통, 핵시설 상당 부분 무력화
22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란 내 핵시설에 대한 성공적 폭격을 완료했다”며 “주요 목표 지점인 이란 포르도에 전체 탑재량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의 위대한 미국 전사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이란 내 타격 지점은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불리는 포르도를 비롯해 나탄즈, 에스파한 등 3곳이다.
이들 이란 핵 시설은 대부분 콘크리트 구조의 지하 수십 미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미국은 자국이 보유한 초대형 폭탄 ‘벙커버스터 GBU-57’를 최소 6개를 투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폭탄은 지하 수백 미터 깊이에 자리 잡은 핵시설을 지상 작전 없이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로 불린다. 여기에 정밀 타격이 가능한 토마호크 미사일까지 30여 발 발사하면서 미국은 물리적 시설 제거와 정밀 억지력을 동시에 선보였다.
공습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사전 공조가 이뤄졌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백악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격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했다. 이를 통해 공격 감행 배경과 구체적 작전 내용 및 성과 등을 설명하고, 향후 예상되는 전개 상황에 관해서도 논의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일찌감치 이란 핵 개발을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으며, 미국과 함께 감시망을 구축해 왔다.
미국의 이번 타격은 핵 개발 국가에 대한 외교적 접근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력 사용으로 전환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지난 수년간 국제사회는 이란 핵 개발에 대해 협상, 제재, 감시 등 수단을 동원해 억제하려 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크지 않았다. 도리어 이란은 그 틈을 이용해 지하 시설을 강화하고 고농축 우라늄 확보에 나서는 등 비공개적 방식으로 핵무기 보유에 다가서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이 핵시설을 직접 겨냥한 것은 기존 대응 방식으로는 핵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는 게 외교계의 주된 시각이다.
이란 공백 메우려는 중동 내 움직임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 핵 개발이 중단 위기에 놓이면서 중동 내 정치·군사적 역학 구도 또한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이란은 시아파 맹주인 동시에, 반미 전선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며 중동 내 존재감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영향력의 근간인 핵시설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면서 그 위상 또한 급속히 추락 중이다. 특히 미국에 대한 무력 저항이나 반격이 즉각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주변국들이 이란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중동의 새로운 패권 구도를 두고 가장 주목받는 국가는 단연 사우디아라비아다. 이란이 흔들릴 경우 시아파 세력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사우디가 떠맡게 되며, 이 과정에서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영향력 확대도 병행될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사우디는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 재개 움직임에 대해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과거보다 훨씬 유연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
이는 지정학적 경쟁자인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통해 자국의 안보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동시에 미국의 중동 내 개입 강도와 양상을 주시하면서 자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의도 또한 짙게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우디의 ‘양면적 실용 외교’로 평가하며 “지정학적 균형점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우디가 새로운 중재자 또는 중심국 역할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모양새”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사우디 외에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일부 걸프국 역시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오만 등은 과거 경제협력 또는 종교적 이해관계로 이란과 연결돼 있었지만, 이번 미국·이란 간 충돌을 계기로 협력 노선을 재점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동 지역 내 새로운 ‘친미 벨트’가 형성될 가능성도 대두되는 분위기다. 결국 이란의 몰락은 중동에서 하나의 권력이 다른 하나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미국을 포함한 복수의 세력이 다시 각축을 벌이는 ‘힘의 재배치’ 국면으로 봐야 타당하다는 평가다.

핵 보유국에 대한 직접 타격 시나리오 현실화
국제사회는 이란의 위기를 두고 ‘CRINK’로 불리는 신냉전 구도에 균열이 생길지 예의주시하는 양상이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반서방 진영으로 분류되는 이들 국가는 최근까지 안보, 에너지, 군사기술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 가운데 이란은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반미 상징 국가로 기능하며 이른바 ‘악의 축’ 균형의 한 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타격으로 이란의 전략적 입지가 줄어들 경우, 이 진영 전체의 구심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해 협상과 제재, 국제 감시망을 중심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란이 물리적 공격의 대상이 되면서 여타 국가들 역시 자국의 안보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가운데 중국은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이란의 외교적 불안정성이 장기화할 경우 자국의 경제적 안정성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동시다발적인 국제 안보 위기 대응 여력이 제한된 상황이다.
나아가 이란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대응 시나리오 역시 점차 현실성 있는 옵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는 각각 핵 개발과 전면전 수행 중인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번 이란 사태를 일종의 정밀 타격 경고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미국이 그간 고수해 온 ‘무력 사용은 마지막 수단’이라는 기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만큼 실제 군사력 투입을 통한 억제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CRINK 구도에서 이란이 실질적 기능을 상실하고, 북·중·러 3국만으로 구성된 반미 진영이 전략적 다각화를 잃을 것이란 관측 또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 진영 내에서 이란은 지정학적 균형을 맞춰주는 존재였던 만큼, 이 축이 무너질 경우 나머지 국가들도 외교적·군사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짊어지게 된다. 미국은 각국을 개별 압박하는 ‘분할 전략’을 더 쉽게 전개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란의 몰락이 단순히 중동 내 권력 이동을 넘어 글로벌 질서 재편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