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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32개 회원국과 방위비 지출 확대 합의 마쳐 이란-이스라엘 교전으로 국제 정세 위태로워진 결과 한국·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도 美 압박 직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지출 확대 관련 협의를 마무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꾸준히 방위 비용 분담 필요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이란과 이스라엘의 교전으로 국제 정세마저 급격히 악화하자 부랴부랴 노선을 선회한 것이다. 나토에서 원하는 바를 달성한 미국의 다음 '타깃'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토 방위비 지출, GDP 2%에서 5%로
24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나토 정상회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그가 에어포스원(미 대통령 전용기)을 타고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주최 환영 만찬이 열리는 하우스텐보스궁으로 향했다는 전언이다. 나토 32개국 정상은 이날 만찬을 시작으로 25일 오전 북대서양이사회(NAC) 본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번 회의의 맹점은 '국방비 확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나토에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라”며 강한 압박을 가해 왔다. 이는 기존 목표인 2%의 2.5배다. 이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2035년까지 직접 군사비 3.5%에 국방·안보 인프라 투자 1.5%로 5% 목표를 맞추자”며 회원 32국과 연쇄 협의를 진행했고, 현시점 대부분의 국가와 합의를 마친 상태다. 이번 회의에서 국방비 지출 확대 합의가 큰 잡음 없이 채택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한 뤼터 사무총장과의 문자 메시지는 이 같은 예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공개된 메시지에서 뤼터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회원국) 모두가 5%에 서명하게 했다"며 "당신은 그 어느 미국 대통령도 수십 년간 하지 못한 업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은 응당히 (국방비를) 크게 지불할 것이며 이건 당신의 승리"라고 덧붙였다.
중동 정세가 상황 뒤집어
주목할 만한 부분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토 국가들이 미국의 국방비 확대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벨기에 브뤼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열린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 미국이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을 당시, 나토 회원국 다수는 비현실적인 목표라며 난색을 표했다. 노르웨이와 독일 외무장관은 각각 “달성 준비가 안 됐다”, “우리 목표는 3%”라며 선을 그었고, 다수의 동맹국이 “현재 기준(2%)을 적용해도 나토 32국 중 9국은 여전히 목표 미달이고, 미국의 국방비 지출조차 현재 3.38% 수준“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결국 4월 외교장관 회의는 동맹국들의 성토 속에 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이처럼 국방비 증액을 반대하던 나토 국가들의 태도가 뒤집힌 것은 최근 들어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국제 정세가 급격히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미국은 이란의 주요 핵시설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했고,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 공격을 공언한 상태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교전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까지 군사적 개입을 단행하며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어느 방향으로 확산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외신들은 위태로운 정세 속 나토 각국이 서로 군사 우위를 차지하고자 군비를 경쟁적으로 늘리며 '도미노 게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스페인 등 일부 회원국은 여전히 국방비 증액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 중이다. 스페인은 국방비 증액 공동성명 초안에 외교적으로 합의하면서도, 자국은 5%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합의 직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TV 연설에서 "스페인은 GDP의 2.1%만 국방비로 써도 충분해 5% 목표를 달성할 필요가 없다"며 "다른 국가의 국방비 증액에 대한 바람을 전적으로 존중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추산에 따르면 스페인은 지난해 GDP의 1.24%인 172억 유로(약 27조3,551억원)를 국방비로 지출했다. 이는 나토 회원국 중 가장 적은 수준이다.

美 정부, 아시아 동맹국 '정조준'
미국의 국방비 확대 압박은 향후 나토 파트너 국가이자 미국의 아시아 내 동맹인 한국과 일본, 호주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전해질 가능성이 크다. 뤼터 사무총장은 23일 사전 기자회견에서 “유럽과 아시아 안보는 더 이상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며 “중국과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IP4(인도-태평양 4개국,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와 협력도 긴밀히 이뤄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국·러시아·북한 등과 직접 맞서고 있는 한국·일본과의 방위 산업 및 안보 정책 연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 정부 역시 아시아 동맹국들에 직접적으로 국방비 지출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아시아 안보 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아시아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이제 유럽 국가들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며 "나토 회원국들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 북한이라는 훨씬 더 위협적인 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럽보다) 적게 지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며 'GDP 대비 5%’를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GDP 대비 약 2.5% 수준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 18일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2026회계연도 국방부 예산안 청문회에서도 유사한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나토 동맹국들이 GDP의 5%를 국방비 및 관련 투자에 지출하겠다는 약속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임기 초에 추진했던 목표였고,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수준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나토가 행동에 나선 만큼, 동맹 방위비 지출의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됐다”며 “이 기준은 전 세계 모든 동맹국, 아시아 지역을 포함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