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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020~2024년 전 세계 무기 수출 43% 점유해 정부 지원 발판 삼아 러시아 완전히 꺾은 프랑스 '폴란드 특수'에 반짝 성장한 韓 방산, 향후 과제는

세계 무기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안보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각국 방산업계의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양상이다. 프랑스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직면한 기존 방산 시장 강자 러시아를 꺾고 세계 2위 자리에 올라섰으며, 우리나라는 '폴란드 특수' 등의 효과로 세계 9위에 안착했다.
최근 5개년 글로벌 무기 시장 동향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언론 24/7 월스트리트닷컴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 등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전 세계 무기 시장을 이끈 것은 미국이었다. 해당 기간 미국은 전 세계 107개국에 무기를 수출하며 시장 43%를 점유했다. F-35 전투기,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 첨단 군사 기술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았다. 지역별로는 유럽(35%)이, 개별국 기준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12%)가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
반면 러시아는 지난 5년간 무기 수출이 64% 급감했고, 세계 시장 점유율도 7.8%로 떨어졌다. 서방국의 제재와 전쟁으로 인한 생산 차질, 부진한 성능으로 인한 수요 감소 등 여러 악재가 누적된 결과다. 인도(38%)와 중국(17%)이 러시아의 주요 고객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국제적 신뢰도가 하락한 만큼 앞날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같은 기간 중국 역시 무기 수출이 5.4% 감소했다. 점유율은 5.9%다. 파키스탄이 중국 무기 수출의 63%를 차지하는 가장 큰 고객이며, 최근에는 세르비아와 태국 등으로 고객층이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 무기 수출의 3.1%를 차지했다. 세계 군사 기술의 전문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성과다. 이스라엘은 최첨단 드론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앞세워 인도, 아제르바이잔 등의 국가를 충성 고객으로 유치한 상태다. 최근 벌어진 하마스와 헤즈볼라, 그리고 이란과의 충돌에서 이스라엘산 첨단 무기들의 파괴력이 확실하게 입증된 만큼, 향후 추가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방산 강국' 등극한 프랑스의 약진
프랑스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 2위 자리를 유지했다. 과거 장기간 시장 2위 자리를 지켜 온 러시아를 완전히 제치고 시장 입지를 다진 것이다. 프랑스의 글로벌 무기 시장 점유율은 2015~2019년 8.6%에서 2020~2024년 9.6%로 성장했다. 프랑스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인 국가는 인도(28%)였으며, 카타르와 그리스도 주요 수입국으로 집계됐다.
프랑스 무기 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정부의 탄탄한 지원이 있다. 지난 1990∼2010년대, 냉전 해체로 인해 무기 수요와 국방 예산이 급감하면서 방위 산업은 명백한 침체기에 들어섰다. 당시 영국·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이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무기 생산 라인의 대부분을 해체하고 방산 기업을 민영화했다. 반면 프랑스는 주요 방산 기업의 지분 일부를 국영화하는 등 무기 생산 역량이 녹슬지 않도록 힘을 쏟았다. 각국의 무기 수요가 되살아났을 때를 대비해 정부가 시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현재 프랑스 방위산업 생태계는 10여 개의 대기업과 4,000여 개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중점 관리를 실시하는 기업은 350∼400개에 달한다.
정부의 금전적 지원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비판이 돌아올 정도로 공격적이다. 지난 2021년 프랑스는 이집트에 라팔 전투기 30대를 수출하면서 계약 금액의 85%(5조원) 이상을 대여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최하위 7등급 국가(62개국)에게도 ‘조건부 승인’ 형태로 방산 수출 금융지원을 실시한다. 이에 따라 프랑스 방산 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웃돈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시장에 정착한 것이다.

韓 방산, 여기서 멈추면 끝이다
한국의 2020~2024년 무기 수출은 4.9% 늘어났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2.2%로 9위 수준이다. 국내 방산 기업들이 2024년 화려한 수출 실적을 올리며 지표가 개선된 것이다. 하나증권과 메리츠증권 등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KAI),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 주요 상장 방산기업 31개사의 합산 매출은 43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 대비 16%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대거 수입한 폴란드 덕분에 양적 성장세가 가팔라진 것이다. 폴란드는 지난 2022년 한국 방산업체와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천무 등 4개 무기 체계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체결했으며, 이후 순차적으로 이행 계약을 맺어 왔다.
문제는 국내 방산업계의 폴란드 특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향후 금융 지원 문제 등이 불거지거나 폴란드의 정치·경제 상황에 변화가 생길 경우, 우리나라 방산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곳곳에서는 한국 방산업체들이 판매처를 시급히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의 군사 전문 매체 제인스와 미국 디펜스뉴스는 최근 K-방산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중동, 동남아, 남미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시장 다변화'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정부와 방산업계는 최근 루마니아에 K-9 자주포를 수출하는 등 동유럽의 다른 국가와 중동 지역을 상대로 적극적인 수주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 경쟁력 제고'가 최우선 과제라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한 외교 전문가는 "우리나라 방산업계는 지금껏 '가성비'를 앞세워 성장해 왔다"며 "현재 상황에 안주한다면 국제 정세가 안정된 이후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과거의 성공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인공지능(AI), 드론,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 등 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꿀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