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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1조 엔 투자해 국립 조선소 신설한다 선박 제작 기술·노하우 건재, 생태계는 녹슬어 전략적 제휴·현지 거점 확보 등에 속도 내는 韓 조선사들

일본 정부가 조선업 부활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국립 조선소를 신설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미국의 유지·정비·보수(MRO) 수요를 전면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일본의 새로운 국립 조선소가 미국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한국 조선 기업들과 시장에서 조만간 '정면충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日, 왜 조선업에 주목하나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국가가 직접 조선소를 짓고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기는 방식의 국립 조선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1980년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으며 대폭 축소된 조선업 인프라를 정부 주도로 다시 확충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의 목표는 국립 조선소 설립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고, 선박 생산량을 2배로 늘리는 것이다. 이에 투입되는 공공·민간 투자액은 약 1조 엔(약 69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신규 조선소 설립은 미 정부에 내세울 '협상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조선업계는 기존 군용·민간용 함대에서 발생하는 수리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다. 높은 선박 건조 비용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많은 조선소가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도쿄대학교 과학기술정책 교수이자 정부 고문인 스즈키 가즈토는 "미국은 이제 일본과 한국이 군함 수리를 돕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법적으로 외국 기업은 군함을 건조할 수 없지만, 정밀 검사와 수리는 수행할 수 있어 미국 조선소에 대한 압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日 조선업의 현주소
미 해군 함정 시장을 노리던 한국은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선박의 절반을 건조했던 일본은 한국·중국에 밀려 지난해 글로벌 신규 수주 점유율이 6%(439만 CGT)까지 떨어졌지만, 선박 제작·운용 기술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조사업체 베슬스밸류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선박의 총자산 규모는 2,313억8,100만 달러(약 314조9,000억원)로 중국(2,552억3,600만 달러)에 이어 글로벌 2위 수준이었다.
미 해군과의 협력 경험도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 있다. 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해군 제7함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일본 도쿄만 인근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함정 MRO를 실시해 왔다.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밀착한 미국은 지난해 영국·호주와의 안보동맹 오커스(AUKUS)에 일본 측 참여를 공식 추진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의 조선업 생태계는 장기간 이어진 침체 흐름으로 인해 녹이 슬어 있다. 고부가가치 선종의 대표 격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분야에서는 2019년 이후 단 한 척의 인도 실적이 없고, 수주 잔고도 없는 상태다. 특히 GTT 멤브레인형 화물창 기술 등 글로벌 표준이 적용된 LNG선은 미쓰비시중공업이 2000년대 초반 인도한 3척이 전부다. GTT 멤브레인형 화물창 기술은 LNG 운반선에 적용되는 핵심 화물창(저장탱크) 설계, 제조 기술이다. 이 밖에도 선체 용접 등 핵심 공정 숙련공의 고령화, 특유의 고비용 구조, 장기간 보수적 투자 기조 등도 일본 조선업 생태계의 구조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韓 조선업계, 美 시장 공략 박차
반면 일본과 맞붙게 될 한국 조선 기업들은 이미 전략적 제휴와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 등을 통해 미국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4월 미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의 기술 협력을 본격화했으며, 지난달 19일에는 미국 조선사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전략적 포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중형급 LNG 이중연료(DF) 컨테이너선을 공동 건조하기로 했다. 설계와 기자재 구매 대행, 기술 지원은 물론 일부 블록 제작도 HD현대가 맡는다. 군함에서 상선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며 미국 조선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오션은 한층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2024년 12월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내 연안 운송용 상선의 50%를 건조한 실적을 지닌 중견 조선사로, 현재 한화오션의 미국 해군 함정 건조·MRO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한화오션은 국내에서 건조한 선박의 국적을 미국으로 전환(리플래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중공업은 LNG선, 드릴십, 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 등 고부가가치 선종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