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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 사법리스크 해소 후 공격적 M&A 마시모·플랙트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대형 계약 젤스 플랫폼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공략 본격화

삼성전자가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 젤스(Xealth)를 인수하며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번 계약은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와 독일 플랙트 인수에 이은 올해 세 번째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웨어러블·헬스케어·공조·인공지능(AI)·전장(電裝) 등 신사업의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는 행보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반도체·로봇·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M&A가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갤럭시 디바이스와 연계해 맞춤형 진료 제공
7일 삼성전자는 젤스와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연내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 금액은 양사 합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번 계약을 계기로 미국 시장에서 커넥티드 케어 서비스 사업을 본격화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전자의 커넥티드 케어 비전은 일상에서의 웰니스 관리와 의료 분야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합해 갤럭시 디바이스 사용자가 편리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나아가 질병 예방까지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6년 미국의 대형 병원 그룹 프로비던스 헬스 시스템(Providence Health System)에서 분사해 설립된 젤스는 현재 애드버케이트 헬스(Advocate Health)·배너 헬스(Banner Health) 등 주요 병원 그룹을 포함한 500여 개 병원과 당뇨·임신·수술 등 다양한 분야의 70여 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과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젤스의 플랫폼은 디바이스를 통해 수집된 환자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료진이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고, 환자 상태에 적합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을 처방하거나 추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데이터센터 수요 고려해 공조 전문기업 인수
이번 젤스 인수는 올해 삼성전자가 단행한 세 번째 대규모 M&A다. 지난 2월 이재용 회장이 '삼성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혐의 재판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사실상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자, 삼성전자는 미래 먹거리 확보와 신사업 확장을 위해 공격적인 M&A에 나서고 있다. 첫 번째 M&A로 지난 5월 삼성전자의 자회사 하만(HARMAN)은 미국 헬스케어 기업 마시모(Masimo)의 오디오 사업부 사운드유나이티드(Sound United)를 3억5,000만 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했다.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8년 만의 대규모 M&A였다.
불과 일주일 뒤 삼성전자는 또 다른 대형 M&A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계 사모펀드(PEF) 트라이튼이 보유한 독일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FläktGroup)의 지분 100%를 15억 유로(약 2조3,76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이다. 1918년 설립된 플랙트는 유럽 최대 공조 전문 업체로 전 세계 65개국의 가정, 사무실, 학교, 병원과 첨단 시설에 중앙 공조 제품 및 솔루션을 공급해 7억 유로(약 1조원) 이상의 연 매출을 내는 글로벌 톱 티어 기업이다. 특히 최근 AI 열풍 속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와 맞물리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생성형 AI, 로봇, 자율주행, 확장현실(XR) 등 미래 기술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플랙트 인수의 전략적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외에도 글로벌 톱 제약사, 헬스케어, 식음료, 플랜트 등의 폭넓은 대형 고객을 확보하고 있어 삼성전자의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향후 삼성전자는 자사의 빌딩 통합 제어솔루션(b.IoT)과 플랙트의 공조 제어 솔루션을 결합해 유지보수 및 스마트빌딩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할 방침이다.
반도체·바이오·AI 분야 등, 추가 M&A 전망
시장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금융, 유통, 반도체 등 핵심 산업군에서 M&A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온 만큼, 향후에도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인수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 AI, 바이오헬스, 전장, 디스플레이 등 분야를 중심으로 신사업 확장을 위한 대형 투자가 예상된다. 먼저 반도체 분야에서는 AI 슈퍼컴퓨터 칩 설계로 주목받는 세리브라스 시스템스(Cerebras Systems)와 AI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영국 기반 기술 기업 그래프코어(Graphcore)가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일각에선 반도체 설계(IP) 기업 ARM의 인수 가능성도 다시 제기된다. 2022년 이재용 당시 부회장과 ARM의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의 회동으로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이 부상했다. 이듬해에는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 또는 상장을 추진하자, 삼성전자를 비롯해 인텔, 퀄컴, SK하이닉스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ARM 지분 인수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ARM의 시장 중립성, 높은 몸값, 각국의 반독점 규제 등으로 실제 인수로 이어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및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자동화 머신러닝 플랫폼을 제공하는 데이터로봇(DataRobot)과 오픈소스 AI 플랫폼을 운영하는 허깅페이스(Hugging Face)가 인수 대상으로 언급된다.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는 산업용 IoT 에지 컴퓨팅 기업인 포그혼(FogHorn)과 AI 기반 IoT 솔루션을 제공하는 C3.ai가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는 바이오시밀러 및 유전자 치료제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바이오젠(Biogen)과 유전자 편집 기술을 보유한 빔 테라퓨틱스(Beam Therapeutics)가 인수 검토 대상이다.
전장 및 전기차(EV) 분야에서는 자율주행 센서 기술을 보유한 벨로다인 라이다(Velodyne Lidar), 고체 배터리 기술의 솔리드 파워(Solid Power),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의 NXP 반도체(NXP Semiconductors), 온 세미컨덕터(ON Semiconductor)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디스플레이 및 확장현실(XR) 분야에서는 증강현실(AR) 글라스를 개발하는 매직 리프(Magic Leap), 가상현실(VR) 헤드셋 기술의 바르조(Varjo), 그리고 마이크로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보유한 뷰리얼(VueReal) 등이 인수 대상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