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5월부터 수익금 미지급으로 피소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채권·자산 동결 대표 및 본사 압수수색, 피해자 300명 넘어

아트테크 폰지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서정아트센터의 투자자들이 이 센터에 대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산과 채권을 동결해 투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서정아트센터는 개인 투자자의 자금으로 국내외 작가 작품에 투자해 수익을 배분하는 아트테크로 유명한 갤러리다. 지난 5월부터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지 않아 폰지사기(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로 고소당했다. 업계에서는 서정아트센터 아트테크 피해금액이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월 0.8% 이자 약속, 5월 지급 중단
9일 미술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채권자 김모씨 외 1명이 신청한 서정아트센터 기업회생절차를 개시하고, 7일 서정아트센터에 대한 채권과 자산 동결 조치를 내렸다. 신청자들은 서정아트센터가 판매한 아트테크 상품 투자자들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최근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공유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했다. 현재 피해 투자자들은 3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정아트센터는 소속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 센터에 맡기면 전시회 등을 통해 얻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월 0.8%씩 지급하겠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라도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갤러리가 재매입해 원금을 보장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최근엔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 작가 작품에 조각투자를 해 월 1%의 수익을 주겠다며 투자금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서정아트센터는 지난 5월부터 돌연 수익금 지급을 중단했다. 당시 이대희 대표는 딜러들을 통해 구매자들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국세청 세무조사 때문에 6월 30일에 이자를 일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투자자들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이 센터를 고소했고, 경찰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소재 서정아트센터 본사와 A씨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갤러리K 아트테크 사기와 동일 수법
서정아트센터의 사기 수법은 앞서 문제가 됐던 갤러리들과 거의 동일하다. 주로 보험설계사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상품을 판매했으며 연 10%대의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면서도 원금을 보장하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라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23년 불거진 ‘갤러리K 아트테크 사기’ 사건이다. 당시 갤러리K 역시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다수의 투자자를 끌어들이고서,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혔다.
갤러리K는 ‘아트노믹스’라는 이름의 투자 상품을 내세워 투자자가 일정 금액을 투자해 그림을 구입하면, 갤러리K 측이 그 그림을 기업이나 병원 등에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연 7~9%의 수익을 배당했으며, 계약 종료 시에는 해당 그림을 재매입해 원금을 돌려준다는 방식이었다. 특히 원금 손실 우려가 없다는 점과 함께 유명 배우가 출연한 광고와 주요 대기업과의 협업을 강조하며 피해자들을 현혹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2023년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 이후 갤러리K의 재무 상태와 사업 구조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갤러리K 대표는 ‘경기침체로 경영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 해외로 도피했고, 투자자들의 수익 배당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당시 피해자들은 갤러리K가 애초부터 수익을 창출할 수 없는 구조의 사업임에도 이를 고수익 안정형 상품으로 포장한 계획된 사기라고 주장했다.

동백아트갤러리도 해외 유명 미술품 미끼로 아트테크 사기
지난해 예술계를 강타했던 ‘지웅아트갤러리 사기’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지웅아트 측은 매월 투자금의 1% 수익과 3년 후 원금 보장을 약속하며 미술품 렌털 수익을 미끼로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실상은 투자금 대부분을 갤러리 회장이 운영하는 부동산 시행사업 등 사적 목적에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투자자 명의로 미술품을 구입한 것처럼 속였지만, 실제로는 작가들로부터 작품 이미지를 제공받거나 임시로 작품을 인도받는 데 그쳤던 것이다.
결국 지난해 9월 지웅아트 회장과 임원진 등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3월 1심에서 회장은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지웅아트 관계자 중 일부가 앞서 서정아트센터 지점을 운영하다가 지웅아트 법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두 경우의 유사한 방식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결국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투자자들과 경제적 기반이 약한 예술가들을 이용해 수익성과 예술성을 ‘아트테크’라는 이름으로 동시에 포장했던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동백아트갤러리가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갤러리K가 국내 무명 작가의 작품을 고가로 홍보하며 피해자를 속였다면, 동백아트갤러리는 장 미셀 바키아, 뱅크시, 키스 해링, 파블로 피카소 등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다. 또한 동백아트갤러리는 투자자들에게 미술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조각 투자'하는 형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매달 3.2~5.6%의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유명 미술 작품들을 전시회와 방송 프로그램에 협찬하고 그로 발생한 저작권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 주겠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동백아트갤러리가 이들 미술 작품과 저작권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고, 거래 플랫폼과의 협약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동백아트갤러리가 투자자로부터 입금을 받은 10여 개 계좌의 업체는 모두 실체가 없는 업체였으며, 그 중 일부는 동백아트갤러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보도된 업체기도 했다. 실체가 없는 회사와 MOU 체결을 했다고 홍보하고 이 회사의 이름으로 대리 입금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