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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15%면 수용 가능”, 트럼프 관세 앞에 다시 반복된 ‘불편한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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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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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관세” 무역 마찰 회피에 무게
현상 유지 타협의 민낯, 방어에 초점
트럼프식 협상의 학습 효과 곳곳에서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자동차 관세를 포함한 무역 협정 타결에 근접하면서 고율 관세 위협은 피했지만, “실익 없는 타협”이라는 평가에 직면했다. 기존 15% 수준의 관세를 유지하는 조건이 유력한 상황에서 철강 등 주요 품목은 협상 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한 탓이다. 주요 무역 파트너들이 미국의 압박에 방어적 태도로 임하면서 현상 유지 수준의 협상안을 받아 드는 가운데, EU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협상에 대응하기 위해 ‘일단 들어주고 실익은 따로 챙기는’ 유연한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상 구도 자체는 타협적

23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EU는 유럽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합의에 근접했다. F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EU 내부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1일부터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30% 관세를 피하고자 이같은 수준의 관세에 동의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며 “또한 양측은 항공기와 증류주, 의료기기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 면제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 4월부터 EU산 제품은 미국에서 기존 평균 4.8%의 관세에 10% 추가 관세를 적용받았다. 이 때문에 현재 합의에 근접한 협상안의 최소 관세율 15%는 사실상 현상 유지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는 유럽 측이 주장하던 관세율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이자, 전날 미국과 일본이 발표한 무역 합의와 동일한 수준이다. FT는 “미·일 협상 타결로 EU가 받는 압박이 강해지면서 높은 관세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EU와 미국이 15%의 관세율에 합의하면, 유럽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27.5%의 관세도 15%로 낮아진다. 미국으로서는 기존 관세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유럽의 추가 보복 관세를 피할 수 있고, EU 역시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충족한 채 외교적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결과를 얻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합의는 경제적 실리보다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응에 가깝다는 게 외교계 전반의 평가다.

다만 철강을 비롯한 일부 민감 품목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앞서 백악관은 EU산 철강 제품에 50% 관세를 예고한 바 있다. 미국 측이 철강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입 제한 조치를 유지하려는 기조를 보이는 만큼 해당 부문 협상은 별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에 EU는 여전히 ‘보복 관세’ 카드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달 내 미국과의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최대 30% 관세율로 설정된 보복 관세 패키지를 가동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930억 유로(약 1,095억 달러·150조6,5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위기 피했을 뿐” 평가, 성과 체감도 낮아

EU와 미국이 관세 협상에서 기존 15% 수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의견 접근을 이뤘지만, 유럽 내 일각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예고됐던 고율 관세 위협은 피했지만, 그 대가로 실질적인 감세나 추가 시장 개방은 전혀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산업계에서는 협상 자체가 ‘방어적 합의’에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이익을 지켜내는 수준의 타협이었을 뿐, 미국 측의 요구를 실질적으로 누그러뜨린 결과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비단 EU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미국과 무역 협상을 벌이는 주요 파트너들이 공통적으로 ‘불편한 타협’에 몰리는 양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앞서 미국과의 합의점을 도출한 일본과 필리핀의 경우에도 모두 고율 관세라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 협상에 나섰지만, 실익은 거의 없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번 유럽의 선택 또한 유사한 흐름이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정면으로 맞서기보단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협상 프레임 안에서 제한된 수용만 이뤄지는 식이다.

이러한 타협 구조는 일부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는다. 앞선 무역 합의가 사실상 이후 협상의 ‘기준선’으로 기능하면서 유럽뿐 아니라 주요 교역국들이 ‘위협 → 방어적 협상 → 현상 유지’라는 패턴에 갇힌 탓이다. 이는 자율적 통상정책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효과로 이어지고,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전망이다.

‘큰 틀 합의 → 후속 조율’ 전략으로 정치적 부담 분산

이처럼 많은 국가가 기존 관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미국과의 타협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 협상 방식에 대한 학습 효과가 깔려 있다. 1기 재임 시절부터 반복된 고율 관세 위협과 반복되는 협상 뒤엎기를 경험한 주요 국가들은 이제 정면충돌보다는 ‘외교적 생존 전략’으로 유연한 대응을 택하는 사례가 주를 이룬다. 먼저 큰 틀에서 합의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인 뒤, 이후 세부 조율과 후속 협상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되찾는 식이다.

EU의 전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5% 수준의 기존 관세를 유지하면서도, 철강 등 민감한 분야에 대한 협상은 뒤로 미뤄 외교적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처럼 유연한 전술은 실질적 성과는 다소 부족하지만, 정치적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대외 압박 수위를 갑작스럽게 높이는 상대에겐 일방적 충돌보다 유화적 접근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외교가 전반에 퍼져 있다.

심지어 일부 국가는 이 과정에서 굴욕을 감수하기도 한다. 22일 미국과 무역 협상을 이룬 필리핀이 대표적 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직접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졌지만, ‘병풍’ 역할에 그치며 자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모두 발언만 공개되는 통상적인 정상회담과 달리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40분가량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고, 그러는 동안 마르코스 대통령은 발언 기회도 거의 얻지 못한 채 미국의 정치 논쟁을 지켜봐야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이 실리를 챙기는 데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미국 측에 ‘압박하면 양보한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방적 요구를 큰 틀에서 수용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상대국은 이를 협상 공식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경제적 이슈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지도자로서는 이러한 공식을 활용해 협상 주도권을 쥐는 경향이 뚜렷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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