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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수개월씩 사고 보고 의무 지연 제출 보고서 규정 준수 여부도 조사 '로보택시' 중대 위험 은폐 혐의로 소송 직면도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가 자율주행 관련 사고 보고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교통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테슬라는 데이터 수집 문제였다고 해명했지만, 규제 당국은 충돌 보고 의무 준수 여부를 철저히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자율주행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최근 테슬라는 로보택시 시범 운행 과정에서 드러난 안전 문제와 주주 소송까지 겹치면서, 자율주행 혁신이라는 상징성마저 흔들리는 분위기다.
자율주행 사고 늦장 보고
21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은 테슬라가 특정 운전자 보조 기능 사용 중 발생한 차량 충돌사고의 데이터 관련 신고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NHTSA는 전날 공개된 연방 서류를 통해 “신고된 충돌사고들이 보고서 날짜보다 몇 달 또는 그 이상 전에 발생했다”며 “이러한 보고서의 대부분은 테슬라가 충돌사고 통지를 받은 후 1일 또는 5일 이내 신고해야 하는 사고들”이라고 밝혔다.
테슬라 차량 다수에는 고속도로 주행 시 운전자를 돕는 ‘오토파일럿(Autopilot)’ 시스템이 탑재돼 있고, 도심 도로와 고속도로 모두에서 차량을 안내하는 완전 자율주행 기능도 제공된다. 다만 두 기능 모두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며 언제든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테슬라 측은 자체 데이터 수집 문제 탓에 보고 지연이 빚어졌다면서 지금은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당국은 표준 절차인 '감사 질의'를 개시해 규정에 어긋난 보고 지연의 원인과 지연의 범위, 테슬라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조치 등을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테슬라가 제출한 보고서들이 규정상 요구되는 모든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다.
NHTSA는 이번 조사와 별도로 지난해 10월부터 테슬라가 자율주행으로 광고하는 첨단 주행보조 시스템 FSD(Full Self Driving) 소프트웨어의 안전성에 대한 조사도 벌이고 있다. 안개·먼지 등의 기상 요인으로 도로가 잘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FSD 작동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들이 주요 조사 대상이다.
“사람보다 운전 잘한다더니”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작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법적 판결도 나온 상태다. 이달 초 미국 마이애미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2019년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오토파일럿 사고와 관련해 테슬라가 피해에 대해 2억4,300만 달러(약 3,378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해당 사고는 2019년 야간에 미국 플로리다주 한 2차선 도로에서 일어났다. 테슬라 모델S가 도로변에 주차된 SUV와 충돌한 뒤 차량 옆에 서 있던 젊은 커플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여성 1명이 사망하고 남성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테슬라 운전자는 통화 중 떨어뜨린 휴대폰을 줍기 위해 고개를 숙인 상태였고 차량은 오토파일럿 기능이 작동 중이었다.
미국 배심원단은 이 사고에 대해 테슬라가 33%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운전자의 부주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테슬라의 기술적 결함과 안전 경고 부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라 테슬라는 손해배상금 4,300만 달러와 징벌적 배상금 2억 달러를 합쳐 총 2억4,3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미국 내 오토파일럿 관련 소송에서 테슬라의 유죄가 처음으로 인정된 사례로, 그동안 유사한 소송들은 대부분 기각되거나 합의로 마무리됐었다.
배심원단이 테슬라의 책임을 인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오토파일럿이 도로 경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차 차량과 보행자를 감지하지 못한 기술적 결함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오토파일럿이 고속도로 전용으로 설계됐음에도 일반 도로 사용에 대한 명확한 경고를 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운전자의 과실이 있더라도 “전방 주시 의무를 운전자에게만 전가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인 절반 “로보택시 절대 안 탄다”
테슬라는 현재 로보택시(Robotaxi) 사업과 관련한 사기 혐의로도 소송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 5일 테슬라의 일부 주주들은 텍사스주 오스틴 연방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부풀리고 로보택시의 안전 문제를 숨겼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들은 머스크 CEO와 테슬라가 지난 6월 22일 본사 인근에서 시작한 로보택시 시범 운행과 관련해 중대한 위험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자율주행 시범 운행에 투입된 테슬라 차량은 △과속 △급제동 △연석 주행 △잘못된 차선 진입 △다차선 도로 중앙에서의 승객 하차 등 안전상 문제를 드러냈다.
이에 로보택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도 악화일로다. 전기차 전문 시장조사기관 EVIR(Electric Vehicle Intelligence Report)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미국 성인 8,000명 중 절반은 로보택시와 관련된 문제점이 보도된 기사 내용을 접한 후 로보택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줄었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 중 46%는 로보택시를 이용할 생각조차 없다고 답했고, 31%는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도 꼭 타지 않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1%는 한 차례 로보택시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나, 다시는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연령별, 지역별로 로보택시에 대한 거부감은 뚜렷하게 차이를 보였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53%는 로보택시 탑승을 거부할 의사를 밝혔으며, 이는 18~44세 응답자(35%)보다 18%포인트 높은 수치다. 또한 농촌 거주자 중 53%가 로보택시 이용을 거부한다고 답해, 도시 거주자(37%)나 교외 거주자(46%)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불신을 드러냈다.
설문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는 로보택시가 일정 수준 이상 ‘법령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2010년대 후반 이후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에는 자동차 산업과 IT업계 모두가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낙관적으로 전망했지만, 이후 현실은 성능과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