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부터 美·日까지, 정치적 혼란에 몸살 앓는 주요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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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불신임안 가결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자리에서 물러나 미국은 트럼프發 관세 전쟁으로 '골머리'

프랑스 의회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지난해 말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긴축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다 불신임으로 무너진 지 불과 9개월 만에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 것이다. 프랑스 외에 일본,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최근 들어 내각과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속속 누적되는 추세다.
무너진 바이루 내각
8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은 이날 바이루 내각이 제출한 긴축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총리의 신임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총 574명 중 558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364명이 반대, 194명이 찬성해 불신임이 결정됐다.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연합과 극우 국민연합(RN)이 모두 반대표를 던졌고, 여당 ‘앙상블’과 일부 우파 의원만이 총리를 지지했다. 불신임 가결 정족수는 288표였다. 이에 따라 바이루 총리와 내각은 9일 오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일괄 사퇴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 7월 공휴일 축소, 복지·연금 지급액 동결 등을 포함한 440억 유로(약 71조7,420억원) 규모의 긴축 패키지를 내놓은 바 있다. GDP의 6%에 육박하는 재정 적자를 2029년까지 3% 아래로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국방 예산을 제외한 정부 지출 동결과 공휴일 폐지안까지 담긴 해당 계획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등 좌파는 바이루 총리의 계획을 '역진적(逆進的) 긴축'이라고 혹평했으며, 극우 역시 전기세 인상과 생활비 부담 확대를 이유로 반대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바이루 총리는 지난달 25일 스스로 신임투표를 요청하며 “국민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직시하게 하겠다”고 호소했다.
이번 불신임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2년 새 다섯 번째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23년 여름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 이후 가브리엘 아탈,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이루까지 자리에 오른 모든 총리가 예산·재정 정책 갈등으로 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특히 바이루 총리의 전임인 바르니에 내각은 지난해 12월 헌법 49조 3항을 앞세워 사회보장예산을 강행 처리하다 야당이 발의한 불신임에 무너졌다.
日 이시바도 총리직 사퇴
주목할 만한 부분은 프랑스 외에도 다수의 주요국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최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히며 시장 혼란이 가중된 상황이다. 지난 7일 이시바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자민당) 총재를 뽑는 절차를 개시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8일 조기 총재 선거 실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자민당이 지난해 중의원(하원)에 이어 올해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패배하자 당내에서 이시바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임시 총재 선거 요구가) 당내에 결정적인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날 사임 의사를 밝힌 이유를 설명하고, 차기 총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미국과의 관세 협상 합의도 사임의 배경으로 꼽았다. 미·일 관세 협상이 일단락된 지금이 후임에게 자리를 넘기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으며, 선거 직후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타결했지만 대통령령이 발령되지 않아 곧바로 물러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자 시장에서는 향후 일본의 재정 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시바 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이 이전보다 자유롭게 정부 지출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8일 3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6bp(0.06%포인트) 상승해 지난주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에 다시 도달했다. 반면 5년물 국채와의 금리 격차는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벌어졌다.

트럼프發 '관세 전쟁'의 뒷면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펼친 관세 정책으로 인해 시장 전반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극단적 통상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가 재정 적자를 메꿔줄 '핵심 열쇠'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달 23일 미국 의회 산하 의회예산국(CBO)은 관세 조치가 유지될 경우 향후 10년 동안 미 연방정부 재정 적자가 3조3,000억 달러(약 4,570조원), 재정 적자에 따른 연방정부의 이자 지급액이 7,000억 달러(약 969조원)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CBO가 지난 6월 제시했던(재정 적자 2조5,000억 달러, 이자 지급액 5,000억 달러 감소) 추산치 대비 상향 조정된 수치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현시점 연방정부의 부채는 약 37조1,800억 달러(약 5경1,487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말 36조 달러(약 4경9,853조원)를 돌파한 지 8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37조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핵심 국정 과제를 반영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통과됨에 따라 향후 10년간 미국 재정 적자는 3조4,000억 달러(약 4,708조 원) 추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 수입이 절실한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과는 달리 관세 수입 확대 속도가 재정 적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회계연도 첫 10개월 동안 미국이 거둔 관세 수입은 총 1,357억 달러(약 188조7,59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16%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와 빈곤층을 위한 메디케이드를 포함한 정부 의료 프로그램 비용은 1,410억 달러(약 194조7,400억원) 증가했고, 사회보장 연금 프로그램 비용과 공공 부채 이자 역시 각각 1,080억 달러(약 150조 2,280억원), 570억 달러(약 79조2,870억원) 확대됐다. 사실상 관세 수입이 연방 정부 지출을 상쇄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