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면세점 임대료 25% 인하’ 강제조정에 공항 “수용불가”, 유커 소비 반등이 향방 가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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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공항 면세점 임대로 과도했다" 인천공항 “수용 거부”, 즉각 이의신청 예정 신라가 인지세 내면 본안 소송 직행

인천공항공사와 면세업계 간 임대료 갈등이 본안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법원이 신라면세점에 대해 기존 임대료의 25% 인하를 명령하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공사가 이를 거부하면서다. 다만 이달 말부터 유입되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의 소비 회복은 면세업계 매출 구조를 흔들 수 있는 요인으로, 임대료 갈등의 지속 여부를 가늠할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법원, 인천공항 임대료 25% 인하 결정
9일 인천지방법원은 “인천공항공사는 신라면세점에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25% 인하해야 한다”며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앞서 신라면세점은 운영적자 등을 이유로 공사를 상대로 “임대료를 40% 인하해 달라”며 인천지법에 조정신청을 냈다. 신라면세점이 조정을 신청한 배경에는 지속적인 손실 누적이 있다. 본래 인천공항 면세점은 고정 임대료 방식이었으나 지난 2023년부터 1인당 여객 수수료에 공항 이용객 수를 곱해 산정하는 ‘여객 수 연동 임대료’ 방식으로 전환됐다. 매달 인천공항 이용객 수가 300만 명 안팎임을 고려할 때, 기업당 내야 하는 월 임대료는 300억원 수준인 셈이다. 이는 신라면세점 지난해 연매출(3조2,819억원)의 11%에 달한다.
조정 당시만 해도 고정 임대료 대비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모델로 평가받았으나,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면세점 소비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여객 수 증가에 따른 임대료 부담만 커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특히 유커의 유입 감소, 내외국인 개별 관광객의 소비패턴 변화, 고환율 등으로 면세점 구매자 수가 급격히 감소한 상태다.
하지만 공사는 1차 조정기일에서 임대료 인하 불가 입장을 밝혔고 2차 기일에는 불참했다. 이에 법원은 조정이 결렬된 것으로 보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앞서 신라면세점은 2023년 입찰에서 주류·담배·화장품·향수 매장의 객당임대료를 8,987원으로 가장 높게 써 낙찰자로 선정됐다. 2위는 신세계 8,250원, 3위는 중국의 CDFG 7,388원, 롯데면세점은 6,738원이다. 이번 법원 결정에 따르자면 공항공사는 신라면세점에 583억원의 임대료를 깎아줘야 하는데, 이는 객당 임대료 6,717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입찰에서 떨어진 면세점들보다 낮다.
현재 신세계면세점도 신라면세점과 동일한 취제의 임대료 조정신청을 낸 상태다. 이날 결정을 고려하면 신세계면세점 건도 이번 주 강제조정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가 임대 중인 주류·담배·화장품·향수 매장의 올해 임대료는 약 2,347억원이다.

소송 장기화, 면세점-공항공사 모두에 리스크
공항공사 측은 법원의 조정 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계약이 체결된 만큼,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조정하라는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 강제조정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원의 강제조정은 사실상 구속력은 없지만, 이의신청 없이 확정될 경우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공사가 이의신청을 하고 신라면세점이 법원에 인지세를 납부하면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게 된다. 공사와 면세점 양측 모두 변호인을 통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경우 1심에서 대법원까지 최소 3~5년 이상의 소송전이 불가피할 수 있다.
소송 장기화는 공항공사와 면세점 모두에 리스크다. 면세점은 적자 상태로 영업을 이어가야 하고, 공항공사는 공실이나 서비스 질 하락 우려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우선 면세점들은 강제조정안이 전달된 날부터 시작되는 2주간의 이의신청 기간 동안 향후 대응 전략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소송을 통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거나 인천공항 철수를 택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철수 시 약 1,900억원의 위약금이 발생하지만, 매달 60억~80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소송을 이어가는 것도 부담이 큰 만큼, 보다 손실이 적은 쪽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면세점들이 철수할 경우 공항공사 측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수익은 6,798억원으로, 이는 공항 총수입(2조5,481억원)의 27%에 달한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한 구역에서만 3,986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입찰 시 임대료가 최대 40%까지 내려갈 수도 있어 타격이 예상된다.
유커들의 소비 증대, 공항공사 협상력 회복으로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면세업계와 공항공사 간 분쟁의 변수로 유커들의 귀환을 지목한다. 오는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3인 이상 중국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국내 여행이 허용됨에 따라 면세업계는 특수를 맞을 채비에 한창이다. 면세업계는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관광객이 돌아오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부터 이어진 장기 부진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개인 관광객보다 소비 규모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유커는 오래전부터 한국 여행 시 면세품 등을 대량으로 사 가기로 유명했다. 통상 유커는 기업 또는 기관 등으로부터 여행 경비를 지원받아 오는 경우가 많아 개별 관광객보다 구매력이 훨씬 높은 편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100만 명 증가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0.08%포인트(p) 상승하는 효과(한국은행 추산)가 있을 정도다. 이에 면세업계는 특히 다음 달 1~7일로 예정된 중국 국경절 연휴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맞물려 중국 단체 관광객 유입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매출 증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유커들의 소비는 공항공사의 협상력 회복으로 직결될 공산이 크다. 면세업계의 임대료 인하 요구가 매출 급락을 근거로 제기된 만큼, 유커들의 ‘싹쓸이 소비’가 재현될 경우 공항공사는 현행 임대료 체계의 정당성을 강조할 명분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라와 신세계가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양사는 전체 사업의 적자 규모만 공개할 뿐,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손실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데이터 없이는 임대료 인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납득할 만한 명확한 논리를 제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