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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으로 각 부처 장관의 판단과 책임 아래 알맞은 시기에 적임을 배치할 수 있도록 공무원 인사 자율성을 확대한다. 또 승진에 필요한 최소 근무 기간인 승진 소요 최저 연수 기간을 부처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인사 관련 협의·통보 등의 절차를 최소화해 인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인다.
인사혁신처는 채용·전보·승진 등 인사 전반의 부처 자율성을 확대하는 ‘공무원임용령’과 ‘공무원 인사 운영에 관한 특례규정’ 등 7개 법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9월부터 인사처는 ‘부처 인사 자율성 제고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따른 조치로 부처별 적재·적소·적시 인사를 위한 총 47건의 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5급 승진임용 시 승진임용 명부 순위와 다른 순서로 임용하는 경우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인사처 협의를 폐지하고, 부처별 보통승진심사위원회에서 세부 심사기준을 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또 국정과제 수행이나 긴급현안 대응 등을 위해 필수보직 기간이 지나지 않은 공무원을 전보하는 경우 필요했던 인사처 통보 절차도 폐지한다. 경력경쟁채용자가 동일·유사 직위로 전보하는 경우 임용권자의 재량으로 필수보직 기간을 기존 4~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할 수도 있다.
공무원 인사 운영에 관한 특례규정을 통해 각 부처 장관이 상황을 고려해 경력경쟁채용시험의 자격요건을 조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한다. 특히 부처 조직 및 인사 운영 상황에 따라 승진에 필요한 최소 근무 기간인 승진소요 최저연수 기간을 탄력적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개정한다. ‘공무원임용령’과 ‘연구직 및 지도직 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규정’도 개정해 인사특례운영기관에 한해 동일 직무를 수행하는 직위를 묶어서 한 번에 선발할 수 있던 범위를 앞으로 모든 부처 5급(상당) 이하로 확대한다. 인사처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고위공무원에 대한 장관의 인사 자율성도 확대하기로 했다.
고위공무원단 후보자 자격요건 중 근무 기간 또는 경력요건을 완화해 승진후보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직무등급이 낮은 직위로의 전보를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폐지하는 등 고위공무원단 인사규정도 개정한다. 일반직공무원 직위를 전문경력관 직위로 변경하거나 고위공무원단 직위의 전담 직무대리 지정 및 별정직 공무원을 기관 내 직무 분야가 같거나 유사한 다른 직위로 이동하는 경우 등에 필요했던 인사처 협의도 각 규정에서 폐지한다.
김승호 인사처장은 “앞으로도 각 부처의 적재·적소·적시 인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각 부처 인사 자율성 확대 및 책임장관제 구현을 위해 추가적으로 과제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책임장관제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하나는 ‘일 잘하는 정부’ 실현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분권형 책임장관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우리 권력 구조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릴 만큼 대통령과 청와대에 권한이 집중돼 있는데, 이를 정부 부처에 분산해 '견제와 균형' 원리를 회복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책임장관제’ 도입이 이슈가 됐다. 책임장관제란 각 부처 장관의 판단과 책임 아래 적임자를 배치할 수 있는 제도다. 인사혁신처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되, 장관의 인사권 범위를 확대해 장관의 판단에 따라 적임자를 신속히 배치하고 승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부처 상황이나 채용환경에 따라 경력 채용에 적용하는 자격증과 학위, 경력 등의 기준을 강화 또는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책임장관제 도입하면 무엇이 바뀌나?
이와 함께 장관은 승진을 위한 심사기준도 바꿀 수 있게 됐다. 장관이 부처별 특성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도록 심사기준을 추가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승진을 위한 심사기준에 역량이나 도덕성, 윤리성 비중 등을 강화하는 등의 기준을 추가해 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현재의 정부 인사 체계에서는 비서·비서관과 유사한 직위에 별정직을 임용하는 경우에는 인사처와 협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사처 협의 없이 장관의 재량에 따라 60살 이상인 자도 채용할 수 있다.
승진에 필요한 최소 근무 기간인 ‘승진 소요 최저 연수’ 기간도 탄력적으로 운영된다. 현재는 7·8급 공무원이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2년 이상 근무를 해야 했다. 반면 도입 이후로는 7·8급 공무원이 승진할 경우에는 소속 장관이 부처 특성과 상황에 따라 ‘승진 소요 최저 연수’를 2년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긴급현안 대응과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공무원을 전보할 경우에는 지금까지는 인사처와 협의하고 통보를 해야만 가능했다. 이번 개편으로 소속 기관에서 공무원을 전보할 땐, 인사처에 협의하고 통보하는 절차를 폐지하기로 했다.
연가와 유연 근무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절차도 간소화된다. 미리 계획한 연가 혹은 유연 근무에 대해서는 공무원 스스로 결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연가와 유연 근무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서장 승인이 필요했는데 이를 없앤 것이다.
책임장관제, 실패할 가능성 농후하다
한편, 장관의 인사 운영의 폭이 대폭 확대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장관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인사권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비롯해 비서나 비서관 등 별정직을 임용할 때에도 장관의 과도한 인사권 행사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장관제가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바로 실제 정책을 수행하다 보면 외치와 내치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김영삼 대통령 정부 당시 이회창 총리는 내치 부분 책임총리를 천명하며 취임한 바 있으나, 4개월 만에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자진사퇴했다. 물론 참여정부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본인의 권한을 많이 위임해줘서 이해찬 총리가 책임총리급의 권한을 행사한 바 있으나, 이는 대통령과 총리 두 사람의 이념이 일치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번 실현되긴 어렵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책임장관제가 실현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총리의 경우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은 9차 개헌 이후 직선제 선거에서 평균 35% 이상을 득표했으며, 가장 많게는 51%를 득표한 경우도 있다. 대통령은 대략 국민 40%대의 직접적인 지지를 받아 탄생한 반면 국무총리는 그렇지 않기에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국무총리는 의전서열이 높다고 하더라도 여, 야당 대표나 원내대표의 위상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이들은 국회의 주요 구성원이면서 본인들 모두가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국가의 경우 사실상 책임장관제, 책임총리제와 유사한 정치 형태를 띠게 된다. 프랑스, 핀란드 같은 이원집정부제 국가들은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는 식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한다.
한국의 정치 상황 내 책임장관제의 현실적인 도입이 어려워 보이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의 실패와 성공 요인을 되짚어 보고 해외의 사례들도 충분히 검토하여 우리의 실정에 맞는 '책임장관제'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