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지난달 31일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지난해 매출 2조9,471억원, 영업이익 4,241억원을 기록했으며 역대 최대 실적 달성 및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공시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주문이 폭증했던 탓에 주문 중개수수료와 광고 수입이 증가한 덕택도 있겠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흑자 전환의 주된 이유로 라이더들에 대한 인센티브 축소 및 광고비 인상을 꼽고 있다. 배민 서비스 초기에는 최초 주문 10번 동안 배달료를 부담해주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배달료 부담은커녕 5천원으로도 부족해 1만원씩의 배달비를 받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배달을 담당하는 라이더들에게 주던 지원금은 크게 줄이고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배민은 살찌는 사이 창업자마저 쫓겨난 메쉬코리아
배민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동안 메쉬코리아는 부도 위기에 몰려 대표가 지분을 담보로 급전을 빌렸다가 결국 회사를 빼앗기게 됐다. 지난 1월 내내 창업자인 유정범 전 의장 퇴진 반대 시위가 인수 기업인 hy(전 한국야쿠르트) 앞에서 계속됐으나, 결국 자본의 의지대로 유 의장이 퇴진하고 기업 매각 절차는 완료됐다.
유 의장의 학벌 거짓 의혹 및 잘못된 투자 등이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나,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라이더 업체 간의 경쟁 과열로 인한 영업마진 축소다. 메쉬코리아의 부릉은 쿠팡 라이더스를 포함한 퀵 배송 서비스 경쟁사들의 진입과 동시에 지속적인 경영난을 겪었다.
반면 배달 라이더들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동안 배민을 비롯한 배달 플랫폼들은 경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배민을 인수한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는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요기요와의 결합을 통해 사실상 시장을 독점했다. 쿠팡을 비롯한 IT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네이버·카카오 등에서는 직접 결제를 지원하며, 경기도 등의 지자체에서도 배달 플랫폼 시장에 진입하고 있지만 딜리버리히어로는 여전히 점유율을 놓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딜리버리히어로가 사실상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연결을 통해 배달 플랫폼 시장의 독점력을 확보했다고 본다.
딜리버리히어로의 4조7,500억원 인수, 성공한 도박?
지난 2019년 딜리버리히어로는 무려 40억 달러(한화 약 4조7,500억원)에 배민을 인수했다. 당시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평이 뒤따랐는데, 실제로 2021년 초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민과 연결재무제표를 만들면서 영업권 2조원을 상각했다. 이는 회사를 4조7,500억원에 인수했지만 회사의 실제 가치를 2조7,500억원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초기에는 무리한 인수라는 비판이 잇따랐으나 2021년 적자폭이 크게 줄며 영업손실액이 757억원으로 줄어들자, 2022년 초부터 '올해는 흑자 전환'이라는 소문이 배민 내부에서도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022년에 결국 배민 창업 이후 최초로 투자금에 의지하지 않고 영업이익만으로 운영이 가능한 회사로 올라선 것이다.
사실상 국내 독점 시장을 구축하면서 배민은 배달비 부담을 우아한형제들 내부에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배달전문업체들과 소비자들에게 넘길 수 있게 됐다. 그간 배달전문업체와 배달 플랫폼들은 배달 지점들에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의 보조금을 주면서 사실상 '뇌물'을 바쳐야 했었으나, 배달 플랫폼들은 독점 체계를 완성하면서 그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독점 규제의 실패일까? 경영 혁신의 성공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배민과 메쉬코리아의 현 상황은 2월에 사임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전 의장의 경영 혁신이 성공한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공정위의 독점 규제 실패로 인해 생긴 명백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배달 플랫폼은 독점을 통해 비용을 다른 가치 사슬에 전가할 수 있었던 반면, 메쉬코리아는 독점 시장 구축에 실패하면서 수많은 라이더 업체들과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의 배민-요기요 합병 승인도 논란의 요소 중 하나다. 2019년 국내 2위 업체인 요기요를 운영하던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민을 4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던 당시, 국내 독점법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승인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기업의 배달 플랫폼 시장 점유율을 합할 경우 공정위의 기준인 50%를 훌쩍 넘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020년 말 결국 인수를 승인했고, 6개월 내에 요기요를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세간에서는 이것은 합병을 불허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으나, 이 말이 무색하게 요기요가 사업을 접는 것으로 배민은 독점적인 권리를 넘겨받게 된다. 기업가들이 두 개 회사를 갖게 된 시점부터 이미 공정위의 판단은 단순한 법적 절차에 불과했을 뿐, 기업가들 입장에선 한 개 회사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시장 독점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독과점 규제 실패로 배달비는 10,000원대, 손해는 소비자만
공정위의 판단 착오로 사실상 독점을 허용해준 지 1년 만에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에서 연간 영업이익 4천억원을 만들어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료에 따라 매출 감소가 예상됨에도 시장의 독점적 지위가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배달비가 10,000원을 넘는 경우가 크게 늘었고, 음식점과 소비자가 반반 부담할 경우에도 소비자 부담액은 5,000원이 넘는다. 배달비를 0원으로 줄이는 실험 매장이 등장하면 매출액이 크게 쏠리는 현상이 종종 나타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결국 배달비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면서 배민은 영업이익을 만들어내는 회사가 된 것이다.
음식점주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배민 플랫폼에 매번 인상되는 광고비를 지불하고, 배달비도 반액을 부담해야 하다 보니 영업마진이 크게 악화돼 음식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팬데믹이 종료되면서 배달 중심이었던 음식점들의 폐업률이 오히려 늘었다. 가격 부담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더 닫고 있기 때문이다.
1년을 끌었던 딜리버리히어로의 독과점 심사는 결국 시장을 소비자들과 음식점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형태로 바꿔놨다. 공정위의 담당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없다. 그저 배달 음식이 비싸다고 투덜대는 소비자들과 줄어든 영업마진에 허덕이는 음식점주들만 생겨났을 뿐이다. 이제 피자 1판, 치킨 1마리를 배달비 5천원, 1만원씩을 내면서 주문하는 소비자는 희귀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