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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치솟던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연초 최대 8%대까지 치솟았던 주담대 금리는 지난달 말 기준 혼합형 주담대 하단이 3.66%까지 내려온 상태다. 전세대출 이자율도 하단이 3.69%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연쇄 파산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2022년 말 자산 기준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파고에서도 '뱅크런(Bank run·다수의 예금주들이 예금을 일시에 대량으로 인출하는 것)'이 벌어지는 등 전반적인 시장 불안에 결국 미 연방준비위원회(Fed)가 금리 인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평이 우세하다.
가계대출 금리 하락세, 대출액도 하락세
대출 이자율이 급증하면서 '빚 갚기가 재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다수의 차주들이 부채 줄이기에 안간힘을 써 왔다. 레버리지를 축소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가 늘었고, 부동산의 경우 지난 2022년 초까지 치솟았던 가격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도 급매물이 나오는 경우도 나타났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31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형 금리(신규 코픽스 기준)는 연 4.19~6.126%다.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인상하던 지난 1월 대비 상단기준 2% 가까운 하락세를 나타낸 것이다. 기준 금리가 그사이 소폭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반영되었던 고금리를 조정하는 것이라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 은행 매각 등 주요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 및 매각 절차에 들어가자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조기에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대출액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2월에 692조원에 달했던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3월 기준 680조원대로 줄어들었다. 고금리에 5개월 사이 12조원에 가까운 대출이 상환된 것이다. 사상 최고 수준인 가계부채에 따른 부실 위험이 금리 인하와 함께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레 나오는 것도 시장에서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디-레버리징(De-leveraging·자산 매각 등을 통한 부채 규모 축소)'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5월부터 대환대출 플랫폼 가동 예정
올해 초 역대급 성과급 논란이 언론을 한 차례 돌자, 금융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아래 성과급 규정을 손보고 은행 간 경쟁 등을 통해 초과이익 획득을 차단하게 하는 각종 정책을 마련해왔다. 5월부터 출범 예정인 대환대출 플랫폼도 그중 하나다. '대출상품 백화점' 같은 대환대출 플랫폼 덕분에 차주가 1·2금융권 신용대출금리를 쉽게 비교하고 갈아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퍼져 있다. 연말에는 신용대출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도 추가될 예정이다.
최근 KB국민은행이 2금융권 신용대출을 은행 대출로 전환할 수 있는 'KB국민희망대출'을 내놓자 중·저신용자가 대거 몰린 것을 놓고, 은행권 관계자들은 중도상환 수수료가 줄어드는 시점에 단계적으로 대출을 갈아타는 데 대환대출 플랫폼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다만 3년 약정 대출의 경우 각 1년마다 1/3의 대출액에 대해서만 중도상환 수수료가 면제되는 등 대환대출이 쉽지 않은 구조인 만큼, 은행별로 기존 대출이 급격하게 이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 연준 금리 인하 가속화되면 가계대출 부실 연착륙 가능할 것
미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은행 부실에 대한 위기감에 전문가들은 빠르면 5월부터 미 연준이 금리 인하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지난 3월 미 연준은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선택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선택했다.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향후 시장 기대에 따라 금리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쳐, 미 연준이 5월에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는 예측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내 언론, SNS 등을 통해 수집된 빅데이터 여론도 금융 시장 경색 우려에 따른 통화 팽창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역사상 최고 수준의 가계 부실 위험에 대한 주요 키워드(붉은색 키워드)와 함께 '미국', '전망', '가능성', '완화', '부담' 등의 통화 팽창 정책에 대한 기대감(녹색 키워드)이 나타난다.
은행권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축소세와 맞물려 빠르면 5월부터 시작될 미 연준의 금리 인하를 시발점으로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 1년간의 이자율 상승이 미국 주도로 급격하게 이뤄졌던 만큼, 미국이 내부 경제 문제로 인해 결국 두 손을 들고 시장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의존도가 높은 주변국들의 경제적 부담도 함께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