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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경선과 악습이 낳은 1,000만 명의 '유령 당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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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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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 우리나라 당원은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구 대비 20.2%, 유권자 대비 23.6% 수준까지 늘었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국, 대중정당의 모델 국가로 꼽히는 독일의 당원이 인구 대비 2%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하지만 이들의 입당 원서는 경선, 선거 등 특정 시점에 몰린다. 이들의 정당 가입이 개인의 결정이 아닌 '집단적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활발한 정당 활동도 하지 않는다. 유급 선거운동원을 구매하지 않으면 길거리 인사조차 어려운 우리나라 선거철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당원 중 대부분이 '허울'이며, 당원 폭증이 결국 당원의 발전이 아닌 퇴화의 증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당 소속 사실조차 모르는 '유령 당원'

우리나라의 당원 수는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166만 명이 늘었다. 지난 30년간 꾸준한 당원 수 감소 추세를 보여 온 정당정치 선진국들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그렇다면, 급증한 당원 중 자신이 '당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2023년 2월 전체 당원의 15%인 6만 명을 선별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실상 유의미한 정당 활동을 하지 않는 ‘유령 당원’이 지역구별로 최대 95%에 달했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당비를 내겠다고 약정한 당원 중에서도 40%가 당비를 납부하지 않거나, 아예 계좌번호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에 등록된 당원 수의 대다수가 '유령'인 셈이다.

정당들의 당규에 따르면 당원은 당비를 내지 않는 당원과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정계에서 이들 중 당비를 납부하지 않는 ‘일반 당원’ 대부분은 사실상 허수 당원으로 취급된다. 당적 유지 의사를 장기간 확인하지 않은 채 명부에 이름만 올리고 있는 당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당원으로 '가입 당한' 사람들이 있다. 2019년 이전 종이로 된 입당 원서를 통해 한꺼번에 당원으로 가입된 신규 당원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지인 등의 부탁으로 가입을 허락하긴 했으나, 가입 후 사실상 당원으로서의 유의미한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유령 당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pexels

집단 매집되는 당원들

최근 들어서는 규제가 촘촘해지며 당원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당하는 일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 폭증이 계속되는 이유로는 '당원 매집'이 지목된다. 당원 매집은 일반적으로 당내 경선 시점에 공직 선거 입후보자들이 실시한다. 실제 지역구에서 당선된 대다수 국회의원이 평균적으로 2,000명에서 5,000명 사이의 당원을 매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집된 당원 대부분은 후보자와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연결돼 있다. 정상적인 의미의 '시민 참여'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최근의 당원 폭증은 이들의 정보를 모아 한꺼번에 입당 원서를 제출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일각에서는 지인들의 당원 가입으로도 부족하면 매집책을 두고 직능단체, 종교단체, 노동조합, 체육계, 동창회 등에서 모은 명단을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정계에서는 매집된 당원 중 상당수의 당원이 '이중 당적'일 것이라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중 당적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선관위는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입당이 된 것인 만큼 자진 탈당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중 당적이 명백한 불법 행위임에도 불구, '관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매집된 당원의 대다수 역시 사실상 '유령'에 가깝다. 당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많을뿐더러, 당원임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도와달라는 후보자에게 표만 행사할 뿐 그 이상의 정당 활동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치가 '돈'이 되고 여론이 '힘'이 되는 구조

이 같은 기형적인 당원의 폭증은 '무분별한 개방형 경선'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정당 간 경쟁이 치열하지 않지만 '당내 경선'에서의 갈등이 심한 지역일수록 당원 비율이 높다는 것이 그 근거다. 실제로 선거 시 정당 경쟁이 치열한 도시 지역보다 사실상 '정당에 따라' 당선 후보가 결정되는 경우가 잦은 비도시 지역의 당원 비율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각 당이 공천한 공직 후보자를 놓고 평가해 최종적 주권을 행사하는 '권리자'인 국민을 당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같은 구조가 '당원 매집'이라는 폐단을 불렀다. 1,000원이라는 저렴한 당비 역시 매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매집을 위한 다단계 동원 체계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 매집책에 대한 은밀한 보상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정치 참여와 동원이 곧 돈이 되고 사업이 된다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의원이나 당직자들의 일상 활동에 직접 관여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당원들까지 급증하는 추세다. 정당과 의회 중심의 민주 정치 체계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1,000원의 당비를 6개월 동안, 국민의힘은 3개월 동안 납부한 당원을 각각 '자격이 있는 당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정 집단이 각자의 당비를 몇 개월간 납부하고 당의 결정을 좌우한다면 대통령 후보도, 당 대표도, 정부도 장악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쉬운 당원 매집과 왜곡된 정치 구조, 무분별한 국민 참여로 인해 정치는 '돈'이 됐고, 여론은 정당 장악의 '수단'이 됐다. 만약 당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1만원의 월 당원 회비를 3년 동안 납부해야 한다면 어떨까. 당원의 매집이 어려워지고 국민 참여의 장벽이 높아져도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당원 폭증과 '여론전'이 주를 이루는 공천 체계가 여전히 건재할 수 있을까.

결국 이 같은 당원의 폭발은 허상이고, 마땅히 개선되어야 할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의 경선 제도와 악습은 끊임없는 정당 내부 갈등을 유발하고, 시민 여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결국 국내 당원 비중의 폭증은 정당 활성화의 증거가 아닌, 오히려 우리나라 정당 체계가 악습과 관행 속에 '퇴화'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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