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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보다 1.5배 가까이 뛴 공실률
2026년까지 공실률 상승 불가피
“은행 부실화 우려, 고금리 기조 멈춰야”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고금리, 수요 둔화 등으로 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한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 고점을 찍은 공실률의 추가 상승이 예상되면서다. 상업용 부동산의 위축으로 인한 파급력이 경제 전반으로 번질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금리 인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내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 13.6%
20일(현지 시각) 부동산 정보분석기관 코스타그룹에 따르면 미국 내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은 11월 말 기준 13.6%로 2019년 말 9.4%와 비교해 4.2%p 상승했다. 코스타는 이같은 공실률이 2024년 말에는 15.7%로 추가 상승하고, 2026년 12월에는 17% 넘게 치솟으며 정점을 찍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당 소식을 보도하며 “내년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는 올해보다 훨씬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칠 것”이라며 “시장 참여자들은 입주율이 반등할 것이라는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코스타는 현재 상업용 부동산 임대 계약의 절반가량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전에 체결된 만큼 이들 계약 만료가 돌아오는 시점에는 공실률의 급상승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엔데믹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근로자들의 수는 소폭 증가에 그쳤지만,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등의 하이브리드 근무가 보편화되고 있어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쿠프테크놀로지스에 따르면 미국 내 하이브리드 근무를 채택한 기업은 올해 1분기 51%에서 4분기 62%로 늘었으며, 미국 10개 주요 도시의 보안 카드 판독 시스템을 운영하는 캐슬시스템즈는 “최근 미국 기업들의 평균 사무실 출근율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전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임대 계약은 대부분 7년 단위로 체결되기 때문에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체결된 임대 계약의 만기가 돌아오는 2026년까지 공실률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현지 업계의 중론이다.
가치 하락 예상 부동산, 은행이 떠안을 우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급증하는 공실로 인한 임대료 하방 압력을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은행을 비롯한 경제 전반으로 그 여파가 번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일반적인 소비재와는 달리 고가의 자산인 부동산은 대부분 투자자가 은행의 대출을 이용해 소유권을 획득한 후 해당 부동산의 임대료 수익으로 원리금을 상환하는데,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은행의 부실 대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액은 2조2,000억 달러(약 2,871조원)로 2015년 이후 7년 사이 2배로 급증했다. 하지만 해당 수치에는 상업용 부동산 저당증권(CMBS)이나 부동산 대출 전문 리츠(REITs)를 대상으로 한 융자 등 간접 대출은 포함되지 않았다. WSJ는 간접 대출을 포함한 미국 내 은행권의 전체 상업용 부동산 대출액이 3조3,000억 달러(약 4,306조원)로 추산된다며 이는 전체 은행권 예금의 20%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은행의 부실화 우려에 무게를 싣는다. 미국의 부동산 담보 대출은 통상 10년 만기 상품으로 거래되는데, 만기가 도래하면 새로운 차입 조건으로 재융자를 받는다. 미국의 기준 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인 만큼 전액 현금 상환이 불가능한 차주들은 금리 상승 등 이전과 비교해 불리한 조건으로 재융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자 재융자 대신 은행에 담보로 제시한 부동산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임대 수요가 끊긴 탓에 시장 내에서 매입자를 찾기 힘들게 되면서 대출 상환 및 연장 대신 담보 부동산을 은행에 넘기는 방식으로 처분하는 투자자가 급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거래 절벽이 이어지고 있어 은행의 부실화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거래가 재개되며 신저가를 새로 쓰는 물건들이 쏟아질 경우 은행 건전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일러 위거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상업용 부동산 고문은 “이전까지 3.5% 이자를 지불하던 대출자가 갑자기 7% 넘는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짚으며 “대출자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은행의 부실화도 본격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