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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부에 각자 정책 수립 요구”
기업도 가계도 빚 부담에 휘청
지방 정부 부채 더해지면 ‘역대급’ 빚 예고
부동산발(發)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 지방 정부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이 지자체별 구제 계획 마련에 돌입했다. 중앙정부가 필요 이상의 지방 정부의 지원을 하고 있다는 자국 내 비판이 거세진 데 따른 움직임으로, 산적한 문제에 대해 뚜렷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지방 정부 부채구조 최적화 첫걸음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3일(현지 시각) 리윈제 금융감독관리총국(금감총국) 국장이 지방정부에 맞춤형 구제 정책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리 국장은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앙 정부는 국가의 금융 리스크 관리를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지만, 획일적인 정책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짚으며 “각 지방 정부가 자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 경제는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맞물리며 연일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에버그란데(헝다)와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등이 채무불이행과 파산 위기를 겪고 있는 데다, 이들 업체의 부동산 개발이 다수 중단되면서 지방 정부의 부채도 함께 급증하고 있다.
산업 경제가 악화하며 가계 재정도 타격을 피하지 못한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중국 내 개인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은행권에 등록된 차입자는 854만 명에 달한다. 해당 수치를 집계한 이래 최대 수준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570만 명)과 비교해도 49.8% 늘어난 수치다. 채무불이행으로 은행권에 등록된 이들은 항공권 구매가 제한되는 것을 비롯해 자국 내 소매점의 주요 결제 수단인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을 사용할 수 없다.
기업과 가계가 모두 빚에 휘청이자, 은행들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에 따르면 중국 내 주요 은행들은 대출 부실에 대비해 축적하는 충당금 적립액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11월 중국 내 은행들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890억 달러(약 116조원)로, 내년 예상 적립액의 21% 수준에 달한다. 앞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은행들이 건설업 자금 지원을 확대하면 부실 대출 비율이 0.21%p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산업계와 가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는 중앙정부로도 번졌다. 지방 정부의 부채 위기가 중앙 정부로 옮겨간 양상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부동산 경기 침체 타개를 위한 경기 부양책이 재정 불균형 심화를 불러왔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리 국장이 “하나의 성(지방 정부)이 하나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일성 일정책(一省一政策)’은 이같은 자국 내 비판을 종식하려는 움직임인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부채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지난 10월 말 중앙재정공작 회의에 참석한 시 주석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부채구조를 최적화하겠다고 선언하며 각 경제 관료들이 지방 정부 부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림자’ 부채 수면 위로 떠오르나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내세운 이번 조처가 지방 정부의 누적 부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 지방 정부가 자금 융통을 위해 소위 ‘그림자’ 은행 등에서 융자받은 숨겨진 부채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레버리지 비율(총부채/국내총생산 비율)’은 지난 2007년까지 60% 안팎을 유지하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해마다 급증해 올해 1분기에는 279.7%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같은 레버리지 비율 산정에 중국 은행들이 지방 정부에 제공한 융자 금액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 지방정부가 팬데믹 사태에 대응하는 긴급 지원책으로 산하 투자 및 융자 기구의 차입을 대폭 확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중국의 레버리지 비율은 30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나아가 최근 경제 둔화 및 부동산 침체 장기화로 지방 정부의 수입이 급감하는 등 경상적 지불 이행이 쉽지 않은 만큼 정부의 일성 일정책 추진은 문제 해결보다는 적나라한 현실 인식의 효과로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