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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BTFP 대출 규모, 지난해 11월 중순 대비 25% 이상 늘어 “이자 장사, 수익성 악화된 은행들 생존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지적도 국내서도 은행권 공적자금 수혈 사례 多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당시 만든 긴급대출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올해 3월 종료하기로 했다. 은행 시스템 불안 우려가 크게 낮아진 것과 더불어 최근 은행권이 예대마진을 거두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의 대출 규모가 2개월 전보다 크게 늘어난 가운데 일각에선 은행권이 수익성을 개선해 ‘제2의 SVB’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준이 예상보다 일찍 'BTFP 종료' 발언 꺼낸 배경
9일(현지 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은 이날 열린 한 지역은행 협회 콘퍼런스에서 연준의 긴급대출 프로그램(BTFP)이 당초 계획한 1년 시한에 따라 오는 3월 11일에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 부의장은 “프로그램은 매우 효과적이었다”며 “미국 은행 시스템의 스트레스를 매우 빠르게 줄여줬고, 당초 연준의 의도 대로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BTFP는 연준이 시중은행이 보유한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의 담보가치를 액면가격대로 인정해주고, 이를 담보로 최대 1년간 자금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SVB에 이어 시그니처은행 등이 대규모 뱅크런으로 파산하자 연준이 은행 시스템을 안정화하기 도입됏다.
연준이 예상보다 일찍 종료 시사 발언을 꺼낸 이유는 그간 금융기관들이 BTFP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대두되면서 BTFP 대출금리가 하락하자, 대출을 늘리는 은행이 늘어났다. 실제로 연준 최신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일주일간 BTFP를 통한 대출 규모는 전주 대비 4% 증가한 1,412억 달러(약 186조원)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연준의 2024년 금리인하 기대감이 자리하기 시작하던 지난해 11월 중순 대비 25% 이상 늘어난 규모다.
BTFP의 대출금리는 시장의 향후 1년 기준금리 전망치에 0.1%p를 합산한 금리로 산정된다. 현재 BTFP 금리는 4.93%로 지금준비금 금리인 5.4%보다 낮다. 금융기관이 이 금리로 돈을 빌려 연 5.4% 연준의 만기 하루짜리 예금에 넣을 경우 0.47%p 정도의 무위험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사실상 은행들이 차익거래로 수익을 내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연준은 금융권의 긴급 지원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을 은행들이 이득을 취하는 데 사용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은행의 수익성과 안전성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늘어난 대출 양상을 금융기관들이 수익성을 개선해 안전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금리로 실적이 악화하고 보유한 국채 등의 자산 가치마저 하락한 상황에서 BTFP 종료 직전 유동성을 충분히 쌓아 ‘제2의 SVB 사태’에 대비하려는 전략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계기업들이 늘면서 SVB 사태가 전 세계 은행에서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주식 분석회사 울프리서치는 미국 금융회사를 제외한 기업의 부채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이 지난해 2,040억 달러(약 267조원)보다 342.6% 급증한 9,030억 달러(약 1,186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울프리서치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유럽중앙은행(ECB)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채무불이행(디폴트) 또는 연체 상태에 있는 은행 대출금 규모도 연말까지 급격히 늘어났다”며 “누적된 악성 부채와 고금리, 경기 침체 국면이 중소형 은행들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소형 은행들은 고금리로 인한 자금 조달비용 상승 및 상업용 부동산 불안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자 생존전략으로 은행 간 M&A(인수합병)마저 늘리는 추세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 은행 간 M&A는 2021년 205건에서 2022년 168건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SVB 사태 이후 7월부터 2건의 대형 딜이 성사된 이후 증가하는 양상이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1980년대 S&L(저축대부조합) 사태 등 과거 위기 사례들에 비춰볼 때, 은행의 대형화 유인이 크고 밸류에이션이 낮을 때는 합병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검증됐다”며 “앞으로 미국 중소은행들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은행 간 M&A를 더욱 활발히 전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적자금 수혈받은 국내 은행권, 올해부터 4년간 8조 ‘준조세’ 부담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금융서비스 특성상 금융기관들이 중앙은행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유동성 및 부실 위기에 대응한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도산 위기에 빠진 금융사들의 구조조정을 위해 168조원을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카드사,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은행들에 외화지급보증을 해주며 금융시장 안정을 꾀한 바 있다.
공적자금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재원인 만큼 반드시 상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금융권은 지난 2002년 마련된 공적자금 상환대책에 따라 2022년 상반기까지 총 42조2,000억원을 상환했다. 은행들이 2021년 예상보다 빨리 구조조정 비용을 모두 상환함에 따라 현재 잔여 공적자금 12조6,000억원 전부 정부가 갚아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은행들이 사실상 빚을 다 갚았음에도 명목상 납부 만기가 2027년이라는 이유로 연간 2조원 안팎의 특별기여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 업계에 따르면 예보의 예보채상환기금에서 금융위원회 공적자금상환기금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전출된 금액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약 6조2,5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올해부터 2027년까지 매년 2조원가량의 기금이 추가로 전출되는 몫을 합산하면 전출 금액은 총 14조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고금리로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금융당국의 질책과 달리, 은행권은 지금도 수조원을 부담해 나라 곳간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은행권은 지난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에 기존 차주들에게 약 2조원을 되돌려주는 민생금융까지 지원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이 같은 은행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별기여금을 통해 정부 재원으로 채워진 은행 돈이 결국 정부의 정책 사업을 뒷받침하는 데 쓰이는 가운데 시중 은행들이 매년 2조원의 준조세를 내고 있다”며 “이에 더해 이제는 횡재세까지 부과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 기조는 장기적 관점에서 은행권 안전성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