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민주당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동의가 먼저”
현장에선 사업장 줄폐업·실직자 속출 우려
허점투성이 중대재해법, 효과도 ‘딱히’
도입 2주년을 맞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 종료를 앞두고 사회 각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중소기업 대다수가 인력 부족과 비용 문제 등을 겪는 만큼 추가 유예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고,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탓에 이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계 일제히 한 목소리 “처벌 강화로는 사고 못 줄여”
24일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오는 25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유예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이를 유예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선 것이다. 해당 유예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오는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홍 원내대표는 중소기업계의 사정에 충분히 공감하며 “국민의힘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에 동의한다면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국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유예안 통과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업재해 예방과 관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취지 아래 기존 고용노동부 산하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산업안전보건청으로 승격해 운영할 것을 주장해 왔다.
김 회장은 홍 원내대표와의 회동 후 “이른 아침에 만남을 요청했는데, 민주당 측에서 시간을 내준 것을 보면 이번 유예안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것 같다”며 “중대재해법 유예안 국회 통과를 위해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23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제5단체는 이날 “국내 83만이 넘는 50인 미만 중소·영세 사업장이 만성적인 인력난과 재정난에 시달리는 등 준비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그간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고 짚으며 “이같은 현장의 절박한 호소에도 법 시행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 시행을 서둘러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유예기간을 두면서 보다 기업 스스로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재해예방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향”이라며 “만약 이대로 유예가 종료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나서면, 많은 사업장이 존폐를 고려할 수밖에 없어 실직자 증가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선 효과 기대 이하, 기업의 출혈 강요 정당할까
중대재해법 시행 전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발생 현황도 이같은 적용 유예안에 힘을 싣는 요소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21년 683명이었던 중대재해 사망자는 법이 시행된 2022년 644명을 기록하며 약 5.7% 감소에 그쳤다.
지난해 4월에는 중대재해법 첫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2022년 5월 40대 건설 현장 노동자가 도르래를 이용해 100kg 상당의 철근을 끌어 올리는 작업을 수행하던 중 5층 높이에서 추락해 숨진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업체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안전난간을 임의 철거하는 등 건설 근로자들 사이에 만연한 관행이 사고의 일부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사고 발생의 책임이 대표에게만 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집행유예의 이유를 밝혔다. 법의 허점이 명백히 드러난 대목이다.
안전관리 전문 인력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중소·영세 업체가 중대재해법 적용을 앞두고 우려하는 부분이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직원 20~49명 규모 중소기업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최소 1명 이상 상시 고용해야 하는데, 대기업에 밀려 구인난에 허덕이는 것은 물론 운 좋게 인력을 구해도 최소 5,000만원 이상의 인건비를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자동차 부품 업체 대표는 “한 해 영업이익이 1억원이 안 될 때도 많은데 5,000만원을 추가 지출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