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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당좌 예금 일부, 마이너스 금리 적용 폐지 후 잔액 증가
은행 예금금리 0.001→0.02%로 20배 올려도 日 국민 시큰둥
엔저 지속 전망 우세, 수입물가 자극하면 추가 금리 인상할 수도
일본은행(BOJ)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한 이후 주요 은행들의 잔고가 23조 엔(약 207조원)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업과 개인은 별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외환시장에서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엔저가 진행되는 ‘예상 밖’ 전개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시중은행 3월 당좌예금 잔액, 전월 대비 23조원 증가
18일 BOJ에 따르면 일본 3대 메가뱅크를 포함한 시중은행들의 3월 당좌예금 잔액은 전달 대비 23조 엔 증가한 208조3,940억 엔으로 집계됐다. 3월 16일부터 4월 15일까지 평균 잔액에서 당좌예금 일부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BOJ의 정책이 폐지되면서 잔액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결제를 하기 위해 BOJ의 당좌예금 계좌에 돈을 예치하고 있다. BOJ는 2016년부터 이 당좌예금의 일부에 -0.1%의 단기 정책금리를 적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BOJ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 종료를 결정했다. 마이너스 금리 해제 이후에는 법정준비금을 제외한 초과 금액에 0.1%의 금리가 설정됐다. 법정준비금을 제외한 약 202조 엔의 잔고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BOJ는 연간 2,000억 엔 규모의 이자를 은행들에 지급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BOJ에 돈을 너무 많이 맡기면 금융기관에서 이자 지급 부담이 생기는 구도였던 탓에 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 적용을 피하기 위해 잉여금 투자처를 모색해 왔다. 그 일환으로 은행들은 특히 단기 자금을 주고 받는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푸는 방식으로 마이너스 금리 적용을 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BOJ에 예치만 하고 있어도 꼬박꼬박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금 금리 인상에도 기업, 개인 예금액 제자리걸음
이에 금융기관들은 잇따라 예금 금리를 인상했지만, 예금액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 등이 정기예금 금리를 0.001%에서 0.02%로 인상했고, 지방은행은 지난 17일까지 총 99곳이 일제히 정기예금 금리를 올렸다. 상당수 은행이 지점 평가 항목에 예금 증액을 추가하는 등 그동안 소홀히 했던 예금 유치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이 커지는 만큼 빨리 갚으려는 움직임이 예상되지만, 역시 별 변화가 없다. 미즈호은행 담당자는 “금리 인상을 예상한 조기 상환 등 움직임은 현재로서 제한적”이라며 “향후 금리 부담을 걱정하는 콜센터 문의는 수십 건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을 우려하는 기업들은 변동금리 차입금을 현재 금리 수준으로 고정하는 금리 스와프를 활용하는데 역시 눈에 띄게 이용이 늘고 있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은행 영업 담당자는 “금리 전망을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환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 놀랐다”고 말했다. 특히 수입 기업들은 금리 상승보다 엔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가 금리 인상 카드 만지작거리는 BOJ
마이너스 금리 해제 후 외환시장은 엔화 강세를 전망했지만, 오히려 엔·달러 환율은 154엔대까지 치솟아 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BOJ가 당분간 완화적인 금융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금리 인하 관측은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엔화 약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본 금융당국의 통화정책 대응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큰 폭의 엔화 약세로 수입물가 상승이 가속하면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로 우에다 BOJ 총재는 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엔저가 무시할 수 없는 큰 영향을 준다면 금융정책 변경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익일물 금리스와프(OIS) 시장에서는 7월에 BOJ가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확률을 70% 정도로 보고 있다. BOJ가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시중은행 역시 단기 대출 기준이 되는 단기 프라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개인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와 중소기업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추가 금리 인상은 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마이너스 금리 해제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