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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 13조원, 코로나 이전 대비 반토막
유커 가고 싼커 왔지만, 여행 트렌드 변화 제대로 대처 못해
중국 경기 침체도 면세점 부진에 한몫, 태국·일본도 속앓이
최근 국내 면세업계가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지만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면세업 특성상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 수익이 날 가능성이 크지만 고환율, 관광 트렌드 변화 등의 요인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면세업계, 부진 지속에 시름 '유커 실종 영향'
25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액은 약 13조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2019년 24조원과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올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면세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지난 1분기 매출 8,196억원, 영업손실 2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8.7% 늘었지만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3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호텔신라의 올해 1분기 매출은 9,8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4%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121억원으로 65% 감소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올해 1분기 매출 2,405억원, 영업손실 5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적자 폭을 100억원 넘게 줄였지만 역시 적자는 지속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2018년 11월 출범 이후 내리 분기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3분기 들어서야 첫 분기 흑자 10억원을 거뒀지만 4분기 다시 손실을 낸 뒤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호황을 누리던 우리나라 면세업계가 부진한 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면세업은 관광객·여행객의 수요에 민감한 업종인데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히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750만 명에서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252만 명으로 줄어들더니 2021년엔 97만 명으로 고꾸라졌다.
엔데믹 이후인 2022년 320만 명으로 반등해 지난해 1,100만 명대를 겨우 회복했지만 이번엔 그동안 변화한 트렌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면세업계가 새로운 트렌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로는 싼커(개별 관광객)의 증가가 거론된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유커(단체 관광객)이 한꺼번에 들어와 면세점에 들러 고가의 상품들을 많이 사 갔지만 요즘은 여행 트렌드가 변해 유커보다 싼커가 더 많아진 것이다. 더욱이 이들 싼커는 대형 관광버스보다는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통해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면세점이 아닌 올리브영, 다이소 같은 곳에서 저가 쇼핑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면세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 반해 올리브영과 다이소의 실적은 좋아졌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해 1분기 외국인 매출이 글로벌 택스프리(GTF)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63% 증가했다”고 말했다. 다이소의 해외카드 결제금액은 2022년에 전년 대비 300%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엔 130% 증가했으며 올해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약 76%, 결제 건수는 약 61% 증가했다.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의 경우 고객의 90% 이상이 외국인이며 명동과 홍대, 동대문에 위치한 다이소 매장도 방문객 중 외국인 비중이 50%에 달한다. 싼커들은 우리나라의 김, 라면, 커피 등 식품을 비롯해 마스크팩과 값싼 화장품 등을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커 중심 쇼핑 줄고 '현지 체험' 수요 증가
또 다른 트렌드 변화로는 '경험 소비'가 꼽힌다. 업체를 끼고 정해진 코스를 관광하며 면세 쇼핑을 즐기던 과거와 달리, 방문한 국가의 사람들이 실제로 향유하는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중국 관광객들에 의한 편의점, 음식점 매출이 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기준) CU에서 알리페이·위챗페이·유니온페이(은련카드) 등 중국 카드 결제 금액 전년 대비 신장률은 106.4%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해외 결제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약 1.4배(141.4%) 늘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세계 곳곳의 많은 관광객들이 SNS에 실시간으로 자기가 가는 곳, 먹는 것을 올리고 있다”며 “현지인처럼 경험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행이 번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인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있는 중국인이 한국에서 경험하는 것을 올리면 그것이 또 중국에 퍼지기도 한다”며 “이는 중국인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현상에는 K팝과 K드라마, K푸드 등 K콘텐츠가 외국의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끈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실제 이런 소비 흐름 변화는 중국 MZ세대를 중심으로 포착되고 있다.
中 경기 부진에 해외보다 국내 여행 선호
면세점 부진을 견인한 원인으로 중국의 내수 경기 침체도 거론된다. 중국은 현재 부동산 경기 침체, 내수 부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 등 각종 악재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5.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목표치인 ‘5% 안팎’을 달성했지만 위기론이 지속되는 이유다.
특히 청년 구직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6월(16~24세) 청년 실업률이 21.3%에 달해 석 달 연속 20%를 상회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청년실업률 공개를 중단했다. 중국 경제의 뇌관 중 하나로 꼽히는 부동산 위기도 진행형이다. 한때 중국 중산층을 부자로 만들었던 집값이 고꾸라지면서 소비 여력이 사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불황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통계국 조사 결과, 지난해 중국의 신규 주택 판매량은 전년 대비 6% 감소해 7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이른바 ‘1선 도시’에선 주택 가격이 1년 전보다 최대 14%나 낮아졌다.
이와 관련해 차이 밍팡 대만 담강대학 경제학 교수는 “중국 젊은이들은 돈이 없어 해외로 여행을 할 수 없다"며 "중국인의 해외여행 유인이 크게 줄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자 중국인들은 비싼 해외보다 저렴한 국내 여행에 몰리고 있다. 고물가로 항공권이나 체류 비용 등이 모두 상승하자 국내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중국인의 중화권(홍콩, 마카오, 대만)을 제외한 순수 해외 국가로의 출국 비중을 살펴보면 2023년 3분기 비중은 40.9%로 2019년 3분기(61.3%)에서 크게 둔화했으나 철도 등을 이용한 국내 여객 운송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5.8%나 증가했다.
이로 인해 한국뿐만 아니라 태국이나 일본 등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던 국가도 돌아오지 않는 중국인 관광객에 속앓이를 하는 중이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여행지 1위인 태국은 지난해 1~10월 280만 명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연간 수치도 2019년(1,100만 명)의 3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역시 전성기 30%대 수준의 회복률을 보이고 있어 한국보다 오히려 속도가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