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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에 환각 성분 하르민(harmine) 결합하자 베타 세포 급증
“베타 세포는 어릴 때 생긴 뒤 평생 쓴다” 학계 통념 거스르는 결과
인간 대상 임상시험 등 갈 길 멀지만 새로운 치료법 가능성에 기대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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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성분이 있는 알칼로이드 약물을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Ozempic) 등 비만약과 혼합해 쓸 경우 당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인간 대상 임상시험이 필요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획기적인 당뇨 치료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쥐 대상 실험서 ‘베타 세포’ 촉진 효과 확인
현재 전 세계 수백만 명에 달하는 1형 또는 2형 당뇨 환자들은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 주사 또는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 당뇨는 췌장 내에서 인슐린을 생성하는 베타 세포가 파괴돼 발생하는 질환으로, 과학자들은 인슐린 생산 세포를 재생시켜 인체가 스스로 호르몬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비만 치료제로 눈길을 끈 오젬픽과 환각 기능이 있는 특정 성분과 결합할 경우 베타 세포의 재생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는 지난달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소개됐다. 연구에 따르면 환각 성분 하르민(harmine)을 비만약과 결합시켜 투약한 결과 체내 인슐린 생산 세포가 700%까지 늘어났다. 연구진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채취한 베타 세포를 당뇨를 갖고 있는 쥐와 건강한 쥐의 신장에 각각 이식했다. 이 혼합 약제를 석 달간 투여하자 인슐린 생산이 늘었고, 혈당 수치가 안정화됐으며, 신체 내 베타 세포 총량도 증가했다. 그런가 하면 치료를 중단하고 한 달 뒤에도 새로 생성된 베타 세포가 보존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번 결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베타 세포 재생을 연구하는 저스틴 아네스(Justin P. Annes) 미국 스탠퍼드대학(Stanford University) 부교수는 “이 연구는 신체 내 베타 세포를 치료하고 총량을 늘릴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실험했다”며 “당뇨 치료를 위한 재생의학은 혁명적인 치료법으로서 잠재력이 있고, 우리가 계속해서 추구해 나가야 할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베타 세포는 재생산 어렵다”는 통념 깨부순 결과
이번 연구 결과는 “베타세포는 한 번 만들어진 뒤엔 다시 생성되지 않는다”는 학계 통념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앤드류 스튜어트(Andrew Stewart) 미국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과대학(Icahn School of Medicine at Mount Sinai) 당뇨비만대사연구소 과학 디렉터는 체내 대부분의 인슐린 세포가 아기일 때 발달해 평생 지니고 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뇨 환자의 경우엔 이렇게 제한적인 ‘인슐린 세포 은행’이 더 불안정하게 돌아간다. 2형 당뇨의 경우엔 베타 세포의 기능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수 있고, 1형 당뇨는 아예 신체가 베타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이번 동물 실험의 핵심 물질인 하르민은 체내 베타 세포를 보충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합물 중 하나다. 식물에서 추출하는 이 성분은 남미 원주민들이 ‘마법의 물약’이라 부르는 천연 향정신성 음료 ‘아야와스카(Ayahuasca)’에 주로 쓰인다. 스튜어트 디렉터 연구진이 베타 세포에 대한 하르민의 효과를 처음 입증한 건 2015년이다. 하르민은 세포 복제를 막는 DYRK1A(dual specificity tyrosine-regulated kinase 1A)라는 효소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본질적으로 하르민은 세포 재생산을 계속 가능하게 해 더 많은 베타 세포의 생성을 돕는다. 그러나 이를 단독으로 쓸 경우엔 베타 세포 생성량이 적어 당뇨 환자에게 의미 있는 치료 효과를 주진 못한다는 게 스튜어트 디렉터의 설명이다.
이에 연구팀은 시중에 널리 쓰이고 있는 당뇨 및 비만 치료제인 오젬픽을 비롯해 위고비(Wegovy), 몬자로(Mounjaro), 젭바운드(Zepbound) 등의 약물과 섞어 하르민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장내 호르몬인 GLP-1을 모방한 이 약물들은 인슐린 생성을 촉진하고 베타 세포 기능을 개선해 2형 당뇨 치료에 도움을 준다. 앞서 어린 쥐를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에서 GLP-1은 실제로 베타 세포의 재생산을 증가시켰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아돌포 가르시아-오카냐(Adolfo Garcia-Ocaña) 미국 캘리포니아 시티오프호프(City of Hope)연구소 분자 세포 내분비학과장은 “다들 이 약물이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건 물론 세포의 증식과 재생을 촉진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뻐했다”고 말했다. 다만 인간 성인의 베타 세포에선 같은 결과가 도출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혈당 수치 내리고 인슐린 분비량도 늘려
가르시아-오카냐 학과장과 스튜어트 디렉터 등은 지난 2020년 오젬픽과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 빅토자(Victoza)와 삭센다(Saxenda)의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를 포함해 다양한 GLP-1 관련 약물과 하르민을 함께 쓸 경우 인간 베타 세포를 증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연구진은 살아있는 인간의 췌장 조직 췌장섬(pancreatic islet)을 당뇨병 쥐와 건강한 쥐의 신장에 각각 이식했고, 이들 쥐에 하르민과 GLP-1 관련 약물인 엑센딘-4를 투여했다. 실험의 막바지엔 쥐의 신장을 떼어낸 뒤 3차원 영상 기술을 이용해 베타 세포의 성장을 측정했다. 그 결과 각 약물을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보다 함께 투여했을 때 베타 세포의 성장량이 더 확대됐다. 특히 당뇨가 있는 쥐에선 물을 투여한 대조군보다 7배 더 효과가 좋았다.
이뿐만 아니라 혈당 수치도 낮아졌고, 인슐린은 4배가량 증가했다. 스튜어트 디렉터는 “베타 세포의 기능에 즉각적인 개선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베타 세포 수가 느리지만 꾸준히 늘어났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렇게 늘어난 베타 세포들은 치료를 중단한 뒤에도 변화 없이 살아남았다. 아네스 부교수는 이에 대해 “세포 증가의 지속성과 당뇨 치료 가능성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새롭게 생성된 베타 세포나 기존 베타 세포의 기능이 개선된 게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 파악하려면 보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진은 여전히 이 약물들이 작용하는 기전을 조사 중이다. 가르시아-오카냐 학과장은 GLP-1 약물들이 세포 복제의 활성화와 관련된 신호 전달 물질을 증가시켰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르민이 세포 복제를 막는 요소를 제거하고 GLP-1이 그 과정에 속도를 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구진은 또 이 기술이 섬 세포(islet cell) 또는 췌장 전체를 이식하는 기존의 치료법보다 쉬운 당뇨 치료법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간 대상 임상시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현재 스튜어트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이 여러 용량의 하르민 투약을 견뎌낼 수 있는지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하르민이 환각이나 구역감, 구토,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세포 증식을 촉진시키는 약물인 만큼 원치 않는 세포, 즉 암세포 등을 증가시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하르민 같은 DYRK1A 효소 억제제는 특정 세포를 겨냥해 작용하도록 설계하지 않으면 신체 내 다른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최근 또 다른 연구에선 이 치료법이 췌장섬 내 다른 세포인 알파 세포를 증식시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약물이 필요한 곳에만 작용한다는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특정 형태의 하르민의 경우엔 더 적은 용량으로 투여해도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느린 세포 분열 속도가 새로운 의문을 자아낸다. 아네스 부교수는 “빠르게 분열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세포를 생성해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아네스 부교수가 내세운 한 가지 가설은 이 치료법이 베타 세포가 아닌 세포들을 베타 세포로 변화시켰을 가능성이다.
그런가 하면 이 치료법은 2형 당뇨 환자에겐 획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반면 베타 세포 개수가 현저히 적은 1형 당뇨 환자들에겐 한계가 있다. 로라 알론소(Laura Alonso) 미국 뉴욕-프레즈비테리안 웨일코넬메디컬센터(NewYork-Presbyterian/Weill Cornell Medical Center)의 내분비학 및 당뇨 대사 학과장은 인슐린 분비 능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엄청난 양의 베타 세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포가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면역체계가 이를 파괴하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가르시아-오카냐 학과장은 세포 재생 기술에 면역체계 조절 치료법을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구의 한계를 “베타 세포가 나오는 수도꼭지를 찾았지만 싱크대에 마개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현재 연구진은 면역체계가 베타 세포를 공격하지 않게끔 하는 방법과 베타 세포를 면역체계가 아예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장 약물 등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가르시아-오카냐 학과장은 또 GLP-1 약물이 2형 당뇨 환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는 “하르민은 그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원문의 저자는 로렌 영(Lauren J. Young)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건강 및 의약 부편집장입니다. 영어 원문은 Combining Ayahuasca Compound with Drugs like Ozempic Could Help Treat Diabetes, Mouse Model Suggests | Scientific American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