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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중 '올 하반기 미채용 혹은 미정' 57.5%
취업난에도 '적합한 인재 확보 어려움'이 최대 애로
'공개·신입 채용'에서 '수시·상시·경력 채용' 전환
대기업 10곳 중 6곳이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내수 부진 우려로 인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결과다. 이와 함께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해 '일자리 미스매치'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관련 직무 경험을 갖춘 경력직 채용과 수시·상시 채용 방식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한경협 "경영 불확실성 확대로 하반기 채용 전망 어두워"
29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 5∼19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하반기 대졸 신규 채용 계획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7.5%가 하반기 신규 직원 채용 계획이 없거나 아직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채용계획 미정은 40%, 미채용은 17.5%로 집계됐다.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42.5%로 지난해 하반기 조사와 비교해 7.1%포인트 증가했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고 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수익성 악화·경영 불확실성 대응을 위한 긴축 경영'이라는 응답이 23.8%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고금리·고환율 등으로 인한 경기 부진'이 20.6%,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 어려움' 17.5%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한경협은 "최근 기업이 수시 채용을 확대하면서 채용 시기와 규모 등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어 채용 계획 수립에 대한 부담이 완화된 영향"이라고 해석했다.
하반기 채용시장의 변화 전망에 대해서는 응답 기업의 21.9%가 '수시 채용 증가'를 꼽았고 이어 '경력직 채용 확대' 20.5%, '기업 문화 적합도에 대한 고려 증가' 15.5%, '중고신입 선호 현상 심화' 14.6%,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신기술 분야 채용 확대' 13.2%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하듯 응답 기업 중 70.0%는 대졸 신규 채용에서 '수시 채용 방식을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이 중 수시 채용만 진행하는 기업은 20.8%, 공개·수시 채용을 병행하겠다는 기업은 49.2%로 집계됐다.
최대 애로사항에 대한 질문에는 '요구 수준에 부합하는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응답이 29%, '신산업·신기술 등 과학기술 분야 인재 부족'이 6.5%로 총 35.5%가 직무에 맞는 인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또 대졸 신규 채용 증진을 위해 필요한 개선 과제로는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투자·고용 확대 유도'가 37.5%로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한경협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내수 부진, 경기 심리 악화 등으로 올해 하반기 보수적 채용이 예상된다"며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대기업 5곳 중 1곳 공채 폐지, 신규 직원 40%가 경력직
실제로 최근 기업들은 기존 '대졸 신입직원 정기 공채' 방식 대신 수시·상시 채용을 늘리고 있다. 올해 5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공채의 종말과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500인 이상·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의 채용 방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채용에서 공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39.9%에서 2022년 37.9%, 2023년 35.8%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에 반해 수시·상시채용 비중은 64.2%로 공채의 1.8배 수준이다. 특히 수시 채용을 병행하는 기업의 경우 33.7%가 '3년 이내에 정기 공채를 전면 폐지하고 수시 채용만 진행할 계획'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공채를 운영하는 사업체 86곳에 향후 공채를 유지할 것인지 물은 결과에서도 응답 기업의 19.8%가 '올해까지만 공채를 유지한다'고 답했다.
신입 채용은 줄고 경력 채용은 증가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신규 채용 인원의 47%는 신입직, 11.6%는 1∼2년 내 퇴직해 신입으로 재취업한 경력신입직, 41.4%는 경력직으로 집계됐다. 수시 채용과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국내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 2024년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시 채용만 실시'한다는 응답이 60.6%로 가장 많았고, ‘정기 공채와 수시 채용 병행’은 32.2%, ‘정기 공채만 실시’는 7.2%로 집계됐다. 신규 채용 시 가장 중시하는 평가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이 74.6%로 가장 많았다. 채용시장 트렌드에 대해서도 '경력직 선호 강화'와 '수시 채용 증가'를 꼽은 기업(복수 응답 포함)이 각각 56.8%와 42.2%로 나타났다.
경력직 채용 늘면서 중소-중견-대기업 '계단형 이직 시대'
채용시장이 정기 공채 중심에서 수시·상시·경력직 채용으로 전환하면서 중소·중견-대기업 간 계단식 노동 인력 이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기업의 채용 문화 변화가 청년과 중견기업의 구직·채용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통계청이 발표한 '일자리 이동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으로 기업체 간 이직자는 415만9,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6.0%에 달했다. 이직자의 71.3%는 중소기업 소속이었으며 이 중 12.0%는 대기업으로 이동했다.
수시 채용 확산은 기업의 채용 문화도 바꿔놨다. 기존에는 정기 공채를 통해 범용 인재를 선발해 회사 적합형 인재로 키워내는 방식이라면 최근에는 이미 해당 직무에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재를 선발해 조직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공채 기수 중심이던 조직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동연구원의 조사에서는 "공채 출신끼리 뭉치는 관행이 강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26.8%에 그친 반면 '보통이다'와 '그렇지 않다'가 각각 33.7%, 39.4%로 더 높게 집계됐다.
경력자가 신입직원으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경력신입직도 또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이 같은 '중고 신입' 바람에 '무경력 생짜' 신입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노동연구원에 의하면 경력 없는 신입 채용 비중은 2019년 47.0%에서 2022년 42.5%, 지난해 40.3%로 낮아졌다. 올해 3월 한경협이 실시한 '500대 기업 채용인식 조사'에서도 지난해 대졸 신규 입사자 4명 중 1명이 중고 신입이었다. 이에 반해 신입직원 비중은 2021년 하반기 65.5%에서 2023년 하반기 46.7%로 2년 만에 18.8%포인트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력 없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일을 못 해 경력도 못 쌓는 악순환에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양질의 1차 노동시장을 선배들과 경력직에 내줄 수밖에 없는 탓에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더 높다. 2023년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15~34세 청년의 첫 취업처 중 무려 99.3%가 근로자 1,000명 이하 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을 가려고 해도 결국 중견기업을 징검다리 삼아 '경력 점프'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