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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주가, 공개매수가 75만원 하회한 71만3,000원
경영권 분쟁의 승부처 '영풍정밀' 주가도 공개매수가 아래
2차전 돌입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누가 이겨도 ‘부담'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를 인상했음에도, 이전과 달리 고려아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 아래를 밑돌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짧은 시간 내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에 최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 등 반격 카드를 고심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이번 분쟁이 누군가의 일방 승리로 일단락되더라도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고려아연 주가, 상향 공개매수가 하회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MBK와 영풍이 공개매수 중인 고려아연 주가는 전일 대비 1.28% 오른 71만3,000원에 거래를 마감했고 영풍정밀 주가는 9.67% 오른 2만4,950원에 장을 마쳤다. 두 종목 모두 MBK와 영풍이 상향 조정한 공개매수 가격을 밑돌았다.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 아래로 형성될 경우 공개매수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66만원에서 주당 75만원으로 인상한다는 정정 신고서를 이날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바 있다. 투자자들에게 이전 할증 가격에 추가로 13.6%라는 프리미엄을 더 제시한 것으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용 자금부담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MBK는 이와 함께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는 영풍정밀에 대한 공개매수 가격도 주당 2만원에서 주당 2만5,000원으로 25% 상향 조정했다.
공개매수가 시작된 지난 13일 고려아연, 영풍정밀 두 종목 모두 공개매수가를 넘어선 것과 달리 아래로 주가가 형성된 것은 최 회장 측의 반격에 대한 신중론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 측의 반격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투자자들의 심리가 공개매수에 응하는 방향으로 몰릴 수 있어서다. 섣불리 높은 가격에 매수하게 되면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MBK는 기타 주주 구성원 대부분이 기관투자자인 만큼, 확실하게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이번 공개매수 청약에 참여할 공산이 높다고 자신하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의 인상된 공개매수 가격(75만원)은 상장 이래 역대 최고가 67만2,000원보다도 11.6% 높은 수준이다. MBK는 “지난 13일부터 25일까지 6거래일 동안 고려아연 주식 매수거래의 60% 이상이 개인이었을 정도로 보수적인 기관투자자들은 최초 공개매수가 이상에서 매수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캐스팅보트 '영풍정밀', 경영권 확보 시 고려아연 지분 3.7% 우위 효과
MBK·영풍 연합이 고려아연과 함께 영풍정밀 주식까지 매수하는 것은 의결권 행사를 위한 경영권 확보의 영장선이다. 영풍정밀은 최 회장의 특수관계자로 분류돼 있는데, 이는 최 회장 우호 지분에 영풍정밀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현재 영풍정밀이 보유한 고려아연의 주식은 38만2,508주(지분율 1.85%)로, 최 회장 측의 지분율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영풍정밀의 가치도 높아졌다. 영풍정밀은 전날까지 최근 10거래일 동안 3번의 상한가를 포함해 266%의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영풍 측도 장형진 고문을 포함한 장씨 일가의 영풍정밀 보유 지분이 21.25%에 달하는 등 상당 규모를 확보하고 있다. 더욱이 시가총액 3,200억원에 이르는 영풍정밀은 소액주주 지분율이 40%에 육박하는 만큼 지분 매집이 쉬운 구조다. 이에 MBK는 공개매수를 통해 기존 장 고문 지분(5.71%)을 더해 최 회장 측보다 무조건 앞선다는 계획이다. 장 고문이 MBK와 지분 공동 보유 약정을 맺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MBK가 공개매수로 영풍정밀 경영권을 확보해 고려아연 지분 1.85%를 차지하는 데 성공할 경우, 기존 고려아연의 지분을 빼앗는 것으로 실제 지분 격차는 3.7%까지 늘어나게 된다. 고려아연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보다 자본을 적게 투입하면서도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개매수 성공 시 현재 장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정밀 지분(21.25%)까지 포함하면 MBK·영풍 측의 영풍정밀 지분은 최대 65%까지 늘어난다.
MBK, 가격 상향으로 엑시트 부담
관건은 공개매수를 둘러싼 양측 대응이다. 우선 머니게임 측면에선 MBK 우위를 점치는 시각이 우세하다. MBK는 영풍에 3,000억원을 빌려 공개매수 가격을 올렸는데, 이는 MBK가 파악한 기관투자자 평균 취득단가를 50% 이상 웃돈다. MBK 입장에선 이들 보유 지분 가운데 7%만 가져와도 승기를 굳힌다고 본다.
다만 공개매수 가격 상향으로 MBK 또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대규모 레버리지가 투입되는 사모펀드 속성을 고려할 때 MBK 입장에서는 공개매수 가격을 올려 경영권을 확보에 성공하더라도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낙관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MBK는 공개매수 예상 소요 자금 2조3,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을 내년 6월 만기, 고정금리 5.7%에 차입한다. 만기까지 이자만 63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MBK가 펀드 출자자(LP)에 보장해야 할 IRR(내부수익률)도 10% 중반 수준을 웃돌 게 됐다. 공개매수에 성공해도 최소 5~7년 뒤 이 정도 수준의 IRR에 맞춰 투자금 회수하긴 사실상 어렵단 의미다. 게다가 MBK는 중국 자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해외 매각은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이는 잠재적 매수자 범위를 대폭 줄인 것으로 훗날 매각 과정에서 가격 협상력 열위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고려아연, 대항 공개매수 난항
최 회장 측 역시 MBK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 난관이 상당하다. 공정거래법상 고려아연은 직접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것이 원천 차단된다. 단, 최 회장 개인 차원에서 우호 세력 중심으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수는 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글로벌 사모펀드와 같이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백기사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확실한 회수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투자심의위원회 통과를 낙관하기 힘들다.
실제로 그간 고려아연 측 백기사로 유력시된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은 홍콩오피스 투자심의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경영권 분쟁이 격화할수록 높아진 가격에 참전한 백기사들의 출구전략이 희미해지고 있어서다. 통상 공개매수로 높아진 가격에 지분을 인수하는 경우, 주가가 회귀함에 따라 주식 시장에서 매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 회장 측도 주가 하락 후 베인캐피탈 손실을 보전할 재력은 없는 만큼, 결국 최씨 일가 지분까지 합해 경영권 매각 방식으로 투자 회수를 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신 이미 고려아연의 지분 일부를 갖고 있는 트라피규라(Trafigura)나 글렌코어(Glencore), 스미토모(Sumitomo)와 같은 고려아연 협력업체들이 높은 가격으로 지분을 매수해 주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해당 거래는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고려아연의 장기적 이익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있어 배임 문제가 불거질 확률이 높다. 협력업체 입장에선 자신들이 비싼 가격으로 지분을 취득한 만큼 반대급부를 고려아연과의 거래에서 높은 마진으로 찾거나, 동맹이라는 명목으로 배타적 거래 관계를 형성해 추가 이윤을 확보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업 전개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지분 투자 대가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장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후순위 출자자로 공동 투자자인 FI(재무적투자자)를 떠받치는 구조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FI 측 엑시트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데다 현행법을 우회해 고려아연 자기자본을 공개매수에 투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향후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선순위 투자자 지분을 가져올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쪽을 택하든 미래 성장 재원의 상당 부분을 경영권 방어에 소진한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향후 현금흐름에 병목이 생겨 사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 중 누가 이겨도 진 것과 다름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