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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단대 3D 낸드 장비 매각 타진
칩스법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 막은 美
中 반도체 장비 수입 ‘역대 최고 수준’
지난 3분기 실적 부진을 기록한 삼성전자가 비용 절감에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중국 생산라인의 노후 장비 매각에 나서면서다. 미국의 수출 금지 조치로 중단됐던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 장비 매각이 다시 시동을 거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과 미 정부의 관계 변화에도 많은 이목이 쏠린다.
공정 전환 과정에서 구형 장비 대거 발생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시안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라인의 노후 장비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DS) 비용 절감과 생산라인 조정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현재 다수 업체와 논의에 돌입했으며, 본격 매각 작업은 내년으로 예상된다. 매각 장비는 100단대 3차원(D) 낸드 장비가 대부분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 시안 공장의 공정을 200단대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해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첨단 장비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구형 장비를 여타 기업 및 시장에 판매해 왔다. 사용하지 않는 장비들을 창고에 보관하는 데에만 매달 수십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탓이다. 특히 레거시(구형 공정)를 선단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장비 매각은 필수로 여겨진다.
문제는 미 상무부가 2022년 10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 구형 장비를 매각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구형 장비는 중고 반도체 장비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재활용되곤 했는데, 가장 큰 수요처가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미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8나노 공정 이하 D램, 14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장비·기술,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장비 등은 중국 기업에 판매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리퍼비시(Refurbish)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리퍼비시란 초기 불량품이나 환불된 개봉품을 신상품 수준으로 정비해 다시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중고 장비를 매각할 길이 좁아지면서 재활용으로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다만 이는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비 재활용의 경우 일부 공통으로 사용되는 장비는 부품 교체나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전체 설비투자 측면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며 “최선단 공정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노후 장비 매각과 새로운 설비 도입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美 공장 차질 빚을까’ 신중에 신중 거듭
반도체 노후 장비 매각을 중단한 우리 기업은 비단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SK하이닉스 또한 노후 장비 보관이 장기화하며 막대한 비용을 떠안은 것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이전보다 유연한 자체로 거래에 나설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구입처의 정체가 확실한 경우 규제에 맞게 중고 장비를 매각하겠다는 게 SK하이닉스의 입장이다. 다만 일부 장비를 시장에 내놓으면서도 미국제 장비에 대해서는 여전히 판매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처럼 미국의 반발을 우려하는 것은 이들 기업이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칩스법)의 지원을 받아 미국 내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마찰은 생산라인 건설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4,000억원)를 들여 최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4억5,000만 달러(약 6,300억원) 안팎의 보조금을 수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칩스법의 혜택을 받아 약 64억 달러(약 8조9,40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 현재 텍사스주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미국은 외국 기업에 대한 전폭적 지원 및 수출 금지 조처가 반도체 산업 육성과 국가 안보를 위한 법일 뿐 중국 등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 중이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한 불공정 조치라며 꾸준히 비난하고 있다.
법 지킨 韓 기업들만 불이익 떠안아
한동안 멈췄던 우리 기업들의 노후 반도체 장비 매각이 다시 시동을 건 데는 마이크론과 인텔, 키옥시아 등 미국과 일본 기업들의 노후 장비 매각이 활발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기업이 아무런 제약 없이 구공정 장비를 처분하고, 해당 장비들이 중개자를 통해 중국 시장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만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한동안 주춤하던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이 급증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중국 세관 중국 기업들이 사들인 반도체 장비는 약 260억 달러(약 36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기 이전인 2020년 전체 수입규모(268억 달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미국의 눈치만 보다 실익을 놓친 기업은 우리 기업들뿐인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불안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가운데, 섣부른 장비 매각은 괜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지금 노후 장비를 매각하지 않으면 결국 대학 등에 헐값 매각하는 길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