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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에 방위비 인상 요구하며 관세 부과 엇박자 반도체법에 근거한 보조금 폐지는 중국만 유리 동맹 때리기로 중국과 경제적 밀착 관계 심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중국이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각종 정책이 동맹국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면서 정작 중국을 상대할 역량마저 약하게 한다는 것이 요지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온적 개입, 국제기구 탈퇴 시도와 대외 원조 축소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외교 신뢰도마저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잘못된 외교 정책으로 미국 역량 저하
1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상원 외교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위원회 홈페이지에 '퇴각의 대가: 미국은 세계 리더십을 중국에 이양한다(The Price of Retreat: America Cedes Global Leadership to China)'는 제하의 소수당 보고서를 공개했다. 총 91쪽 분량의 보고서는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진 섀힌(Jeanne Shaheen) 의원의 요청으로 원조 관계자, 전문가, 외국 당국자들과들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중국이 역대 어느 시점보다도 더 미국의 전략적 도전으로 부상했다는 인식하에 지난 6개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평가했다. 그간 중국을 저지하는 데 사용한 다수의 수단을 포기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먼저 보고서는 반도체법에 따라 유발된 투자의 상당 부분이 한국과 대만 등 가까운 동맹국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며 해당 법을 폐기할 경우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하는 등 대외 원조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40개국 이상에서 미국을 제치고 최대 원조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이 연간 수십억 달러를 대외 선전 및 언론 통제에 사용하고 있는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미디어국(USAGM) 산하 미국의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정부 산하 미디어 기관을 폐지하려고 했던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서의 탈퇴 시도 역시 국익을 해치는 조치라고 비판했으며 미국 대학 및 유학생을 겨냥한 각종 정책들로 인해 미국의 우수 인재 유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섀힌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공격하고 미국의 외교 도구를 없애고 적들을 포용하면서 세계 모든 곳에서 후퇴하는 동안 중국은 영향력을 구축하고, 관계를 확대하며, 세계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있다"고 짚었다.

관세 공격 대상국 간 협력 움직임 활발
관세 폭탄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보고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핵심 의제인 관세가 미국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끼친 것은 물론 오랜 미국의 동맹을 약화한다고 봤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3월 5년 만에 열린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를 그 예시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과 일본에 25%의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했는데, 이러한 조치가 한·중·일 협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방위비 인상을 방해한다는 점도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에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 예산으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미국의 관세 정책이 이들 국가들의 방위비 확충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한국 정부가 미국의 관세에 따른 부정적 경제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4월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 금액이 한국의 2022년 국방예산의 약 20%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관세로 인해 동맹국들이 국방력 강화를 위한 재정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관세가 촉발한 역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총 23개 다른 무역 상대국에 서한을 보냈는데, 서한에서는 최소 20%에서 최대 50%까지의 일괄 관세율이 설정됐다. 특히 우방인 유럽연합(EU)과 멕시코산 수입품에 당초 발표보다 높은 3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상대국의 강경 대응 의지를 촉발시키고 있다.
실제 EU는 교역로 개척에서 더 나아가,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할 새로운 자유무역체계 구축을 제안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체계에 반기를 치켜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해 “EU 내에선 미국과 중국을 뺀 무역 구조를 짜는 아이디어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EU는 된서리를 맞은 미국의 전통 우방국 캐나다와 일본에 관세 공동 대응을 타진하는 한편, 인도네시아 등과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타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와 협력 등 보폭을 크 넓히고 있다.
멕시코와 브라질도 미국발 관세 압박의 해법으로 양국 간 경제적 협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양국의 경제적 협력 강화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멕시코와 브라질은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 리더십을 둘러싼 경쟁, 멕시코 무역의 미국 집중 등으로 인해 양국간 무역이 활발하지 않던 역사를 갖고 있지만, 트럼프발 관세 압박에 새로운 협력의 물꼬가 트이고 있는 것이다.
취임 첫날 러-우 전쟁 해결한다더니, 리더십 흔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질적 중재 방안이나 외교적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트럼프 리더십에 불신을 키우는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러-우 전쟁을 끝내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고 공언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약속은 공수표가 됐다. 휴전 협상에 있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도 문제다. 취임 100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를 찍어 누르는 모습을 보였고 유럽의 동맹국들은 패싱했다. 대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둔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신통치 않았다. 트럼프와 푸틴이 합의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 흑해에 대한 부분 휴전은 지켜지지 않은 명목상 휴전에 불과했다. 당시 푸틴은 트럼프의 '30일 전면 휴전' 제안을 거부했고, 대신 '30시간 부활절 휴전'을 선언해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구기게 만들기도 했다.
종전 협상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위트코프 특사를 러시아로 보내며 돌파구 마련에 나섰지만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에도 가시적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만 강화했다. 조바심이 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영토 일부를 포기하라고 몰아세우며, 거부할 경우 종전 논의에서 발을 뺄 것임을 시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하지 않는 것이 양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 역시 뚜렷한 효과는 없자 이번엔 러시아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백악관에서 열린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 중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매우 강력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그 관세는 약 100% 수준이 될 것이며, 이를 ‘2차 관세’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해 “그와의 협상이 수개월 전에는 성사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우 좋은 통화를 하고 나면 그 직후 우크라이나에 참혹한 공습이 벌어진다”며 “그런 일이 세 번, 네 번 반복되면 결국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쟁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바꾼 것은 아닌 데다, 50일의 시한은 러시아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되레 러시아가 이 시한 동안 점령지를 더 확대한 뒤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무기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서도 지적이 적지 않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싶다”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최고급 무기가 전장에 신속히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상 제공하던 과거와 달리 유럽 동맹국에 비용을 분담시키며 미국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에 맞서고 싶지만 여전히 전쟁에는 직접 개입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다.
이에 독일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한 나라(독일)가 17개의 패트리엇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이 체계가 매우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로 이전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독일은 보유하고 있던 12개 패트리엇 포대 가운데 이미 3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으며 2개는 폴란드에 임대했다는 입장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최소 1개는 정비 및 훈련에 투입돼야 하기에 독일이 실제 운용할 수 있는 패트리엇은 6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지원할 패트리엇이 없다"고 단언하며 자국 재고를 통한 추가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