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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 규제기관, 통제·자금세탁방지 등 엄격한 요건 제시 은행, 기술 역량·내부 통제 강화 필수, 제3자 보관 책임도 암호화폐 시장 제도권 편입 가속화 기대감 고조

미국 연방 규제당국이 은행의 암호화폐 커스터디(보관) 서비스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새로운 지침은 고객을 위해 암호화폐 자산을 보관하고 있거나 보관을 고려 중인 은행들을 대상으로 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침을 두고 이전 정부 시절 은행들이 암호화폐 커스터디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만들었던 평판 위험 요소를 종식시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미국 은행들이 커스터디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은행, 암호화폐 보관 전 엄격한 기준 충족 필수
14일(현지시각)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 등 외신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은 공동 성명을 통해 주요 규정 준수, 감독 및 자금세탁방지(AML) 요구사항을 명확히 하며, 은행들이 디지털 자산 보관 시 준수해야 할 기준을 제시했다. 새로운 지침은 은행이 디지털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현행 규정 준수 요건과 위험 관리 관행을 준수해야 함을 재차 강조하며, 특히 고객을 대신해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안전 보관(Safekeepin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명에 따르면 은행은 법적 의무를 지닌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수탁자 역할)로서 암호화폐 커스터디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서비스 계약 및 규제 요건에 따라 관리 책임이 없는 보안 스토리지 제공업체(비수탁자 역할)를 통해 암호화폐 커스터디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규제당국은 은행이 암호화 키를 보유할 경우 모든 통제권과 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은행은 고객을 포함한 다른 누구도 키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해야 하며, 이를 규제당국은 "진정한 통제(True Control)"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확인된 주요 위험에는 암호화 키 손실, 사이버 보안 침해, 시장 변동성, 자금세탁방지 의무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은행들은 적절한 내부 통제를 구축하고 암호화폐 커스터디 산업 동향에 대한 최신 정보를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기술적 역량과 규정 준수 준비 상태를 평가해야 하며, 강력한 운영 프레임워크, 암호화폐 전문 인력, 그리고 최신 기술을 갖춰야 한다.
성명서는 또한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조달방지(CFT), 그리고 해외자산통제국(OFAC)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은행은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의심스러운 움직임은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 신원 정보가 투명하지 않은 블록체인 기반 환경에서는 당국이 제시한 요건을 충족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 있어서다. 나아가 당국은 은행들이 별도의 감사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을 요구했다. 감사에는 암호화폐 커스터디 안전 보관 관리, 암호화폐 키 관리, 그리고 인력 역량이 포함돼야 하며, 내부 전문가가 부족한 경우 제3자 감사인을 고용할 수 있다.
美 상업은행 암호화폐 사업 허가
이번 지침은 미국의 상업은행 암호화폐 사업 허가에 따른 후속 조치다. 지난 5월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미국 은행들이 고객의 요청에 따라 암호화폐를 보관, 매수, 매도 또는 이와 관련된 외부 서비스도 위탁 운영이 가능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은행의 디지털 자산 서비스 제공에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미국 내 국립은행과 연방 저축은행은 고객 지시에 따라 암호화폐 자산을 매수·매도하고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거래 실행, 자산 정산, 기록 보관, 가치 평가, 세금 보고 등 관련 업무도 허용된다. OCC는 암호화폐 수탁을 전통 은행 수탁 서비스의 현대적 형태로 인정하며, 과거 발행한 지침들을 재확인했다.
OCC는 또 수탁 서비스를 신탁 기반으로 제공할 경우, 해당 은행의 헌장 유형에 따라 연방 신탁 규정(9조 또는 150조)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는 안전하고 건전하며 합법적인 방식으로 수행돼야 하며, 제3자에 위탁된 서비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동안 은행이 고객 자산을 수탁한 상태에서 직접 거래를 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명확성이 부족했으나, 이번 발표로 이러한 ‘회색지대’가 해소됐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도 관할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사업 진출을 별도 승인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5,000곳이 넘는 미국 은행이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먼저 FDIC는 ‘금융기관서한(FIL)-7-2025’를 통해 기존의 사전 승인 요건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암호화폐 사업과 관련해 적절한 위험 통제만 갖춘다면 은행이 독자적으로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FDIC는 “감독 대상 기관은 암호자산 및 디지털 자산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허용 가능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며 “단 관련 위험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FDIC의 이번 변화는 2022년 이후 보수적인 감독 방침을 뒤엎는 조치다. FDIC는 웹사이트를 통해 5,000곳 이상의 은행 및 저축기관을 직접 감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래비스 힐(Travis Hill) FDIC 직무대행 의장은 “이번 조치는 지난 3년간의 잘못된 접근 방식을 끝내는 전환점”이라며 “앞으로 은행들이 안전성과 건전성 기준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관련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치뱅크, 내년 암호화폐 커스터디 서비스 출시
앞서 미국 은행 규제당국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암호화폐 기업과 은행의 협력을 제한하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 같은 규제는 완화된 상태다. 이에 은행들은 최근 앞다퉈 커스터디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도이치뱅크가 대표적 예다. 도이치뱅크는 2026년부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해당 서비스는 오스트리아 기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판다(Bitpanda)의 기술 부서와 협력해 개발되며, 도이치뱅크가 지원하는 스위스 기술 업체 타우루스(Taurus)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치뱅크는 2020년부터 암호화폐 시장 진입을 모색해 왔으며, 이번 프로젝트는 디지털 자산 보관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도이치뱅크는 최근 몇 년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여왔다. 앞서 도이치뱅크의 디지털 자산 책임자 사비흐 베흐자드(Sabih Behzad)는 지난달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출 가능성을 언급하며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나 관련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도이치뱅크는 결제용 토큰화된 예금 솔루션 개발 여부도 평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에는 이더리움 기반 L2 블록체인을 개발 중이며, 지케이싱크(ZKsync)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2023년 도이치뱅크는 타우루스와 협력해 암호화폐 커스터디 옵션을 제공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위해 독일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라이선스를 신청했다. 또한 2024년 6월부터 비트판다와 협력해 암호화폐 결제 개선 작업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