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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단지 '1+1 분양' 신청자 이주비 대출 막혀 고가 아파트 거래 위축, 중저가 아파트 거래 늘어 합리적 가격의 경기·인천 분양 단지에 수요 몰려

지난달 27일 정부가 고강도 대출 규제를 발표한 이후, 주택시장에서 수요 구조와 거래 흐름에 뚜렷한 재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고가 주택 및 분양권 거래가 빠르게 위축되는 반면 수도권의 중저가 신규 분양 단지로 실수요 수요가 집중되는 등 시장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다주택자 대상 대출 제한으로 일시적 혼선이 빚어지며 공급 일정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에 정부와 서울시는 선제 대응에 나섰다.
분양권 팔아 다주택자 벗어나는 것도 봉쇄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6·27 대출 규제' 이후 재개발·재건축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6·27 대출 규제’는 다주택자로 분류된 조합원에게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정비사업의 핵심인 이주비 대출까지 원천 차단하고 있다. 기본 이주비 대출이 막힐 경우, 조합원은 시공사가 제공하는 추가 이주비만으로 필요 자금을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추가 이주비는 금리가 높아 조합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1+1’ 신청자 중에는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고령의 조합원이 많아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강북권 최대 정비사업장 중 하나인 북아현3구역 재개발조합은 지난달 실시한 사전 분양 신청에서 조합원의 약 10%가 1+1 분양을 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북아현3구역 외에 한남2구역, 가락삼익맨숀, 노량진1구역 등 다른 주요 정비사업장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송파구 가락삼익맨숀의 경우 전체 조합원 930명 중 33명이 1+1 분양을 신청했고, 한남2구역도 조합원 9명 중 1명 꼴로 신청했다. 노량진1구역에서는 분양신청 조합원 961명 중 절반이 넘는 527명이 1+1 분양 신청자로 확인됐다.
일부 지역에선 분양권 중 하나를 팔아 다주택자 신분을 벗어나는 것도 봉쇄됐다. 도시정비법상 조합원 입주권은 이전고시 이후 3년간 전매가 금지되는 데다 투기과열지구는 완공 때까지 조합원 지위 승계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번 규제가 정부의 공급 확대 기조와도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정비사업장만 53곳, 공급 예정 가구는 5만여 가구에 달한다. 이 중에는 이번 규제로 혼란을 겪고 있는 북아현3구역·노량진1구역·한남2구역 등이 다수 포함돼 있어 공급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도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1+1’ 분양 신청 조합원들의 피해 우려가 커지면서 주택 공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서울시는 최근 정비사업장별 ‘1+1’ 분양 신청 현황을 전수조사해 국토부에 전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분양 신청 조합원 피해와 이주비 대출 제한 등 문제를 종합적으로 살펴 주택 공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개선책을 당국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역시 “대출 규제의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체 거래량의 58.7%가 9억 미만 아파트
매매 시장에도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국토부에 따르면 6·27 대출 규제 이후인 지난달 28일부터 7월10일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8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량(3,894건)과 비교하면 77.9% 감소한 수치다. 다만 아파트 가격대별 거래 비중 변화가 눈에 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인 12억원을 넘어서는 아파트 거래 비중은 급감했다.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고 전입 의무가 발생한 데다 소유권 이전부 전세대출까지 막히면서 '갭투자'로 상급지 입성을 노린 매수자들의 손발이 묶인 영향으로 분석된다.
9억 초과~12억 이하 아파트의 최근 2주간 거래량 비중은 15.1%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21.4%보다 6.3%포인트 줄었다. 20억 초과~25억 이하는 같은 기간 3.4%포인트(6.33%→2.95%)감소했고, 15억 초과~20억 이하 아파트는 2.04%포인트(10.7%→ 8.6%), 30억 초과 아파트는 1.57%포인트(4.29%→2.72%) 줄었다. 반면 중저가 거래 비중은 크게 늘었다. 6억 이하 아파트의 거래 비중은 29.9%로 지난해 말(15%)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6억 초과~9억 미만 아파트는 28.8%로 대출 규제 이후 9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 비중이 58.7%에 이른다.
아파트값 상승률도 꺾였다. KB부동산에 따르면 7월 1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28%로 대출규제 이전인 지난달 23일(0.44%)과 전주(0.31%)와 비교해 상승 폭이 감소했다. 지역별는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노원구 85건(9.65%), 성북구 69건(7.83%), 강서구 65건(7.38%) 순으로 거래량이 많아졌다. 같은 기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서초구는 4건(0.45%), 용산구는 20건(2.27%), 강남구는 34건(3.86%), 송파구는 36건(4.09%)을 기록했다. 해당 지역은 6·27 규제 이전 매물에 한해 대출 규제가 제외돼 다음 달 거래량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전세 시장 갭투자도 막혀, 신규 매물 급감
전세 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세를 끼고 집을 매입하는 갭투자에 활용돼 온 전세 대출도 막히며 신규 전세 매물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기준 최근 1개월 사이 서울 전세 매물은 2만5,599건에서 2만4,819건으로 3.1% 줄었으며, 경기는 2만5,059건에서 2만4,071건으로 4% 감소했다. 인천도 5,209건에서 5,067건으로 2.8% 줄었다. 전세 매물 공급 부족도 예상된다. 부동산R114는 올해 입주 물량이 전국 24만6,113가구로 지난해(32만6,560가구)보다 8만447가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지역의 분양권 거래도 막혔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대출 규제가 발표된 이후 7월 9일까지 신고된 서울 지역 분양권 거래가 4건에 불과하다. 대출 규제 직전(6월 14~26일) 거래 건수(23건)와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모양새다. 이전까지 분양권 시장은 높은 양도소득세 부담과 불리한 세법 해석 등에도 불구, 낮은 초기 자금으로 신축 아파트 투자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실수요자 모두의 관심을 받았지만,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열풍으로 수요가 높았던 분양권 시장에 대출 규제 이후 변화가 감지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실수요자들은 신규 아파트 청약이나 기분양 단지 등으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 뚜렷한 모습이다. 대출 규제와 전세난을 모두 피할 수 있고, 안정적인 내 집 마련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도권에서는 6억원 이하 대출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신규 분양 단지들이 줄줄이 분양을 예고하고 있다. 의정부시 힐스테이트 회룡역파크뷰(1,816가구), 김포시 해링턴플레이스 풍무(1,573가구), 용인시 클러스터용인 경남아너스빌(997세대) 등은 1,000가구 이상의 대형 사업장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