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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원 "빌 황, 주가 조작에 사기" 마진콜 이어지자 디폴트 선언 크레디트스위스 등 은행 10조원대 손실
미국 은행에 13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힌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황(62·한국명 황성국)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Archegos Capital Management) 설립자가 미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에게 대한 배상금 지급 판결은 법원 측의 추가 정보 요청으로 연기됐다.
美 법원, 재산 몰수 및 징역형 선고
20일(현지시간) CNBC·파이낸셜타임스(FT)·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앨빈 헬러스타인 판사는 이날 황씨의 사기 혐의 사건 형사재판 선고공판에서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는 3년 줄었다. 지난 7월 배심원들은 사기, 공갈, 시장 조작 등 10개 혐의에 대해 황 씨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고, 검찰은 징역 21년형을 구형했다.
헬레스타인 판사는 이날 선고에 앞서 황씨에게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액은 내가 재판한 사례의 다른 어떤 손실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헬레스타인 판사는 이날 심리 내내 황씨에게 가혹한 형을 선고할 의도가 있음을 시사하며, 황씨의 사기 혐의를 앞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은 샘 뱅크먼-프리드 FTX 설립자 사건과 비교했다.
앤드루 토마스 검사는 이날 선고 공판에서 "이번 사건은 진정 국가적 재난으로 묘사될 수 있는 드문 사건 중 하나"라며 법원 측에 당초 구형한 징역 21년형과 123억5,000만 달러(약 17조2,800억원) 몰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에 대한 판결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날 헬레스타인 판사는 황 씨에 대한 징역형에 대한 판결만 내리고, 그의 자금 몰수 및 피해자 배상금 관련해서는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판결을 연기했다.
이날 황씨의 변호사인 다니 제임스는 앞서 무죄 판결을 요구했지만 공판 당일에는 징역 4~5년형을 제안했다. 제임스 변호인은 황씨가 여전히 뉴저지의 평범한 집에 거주하고 있다며 그의 자선 활동과 겸손한 생활 방식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19세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황씨가 아버지를 잃고 어려운 가정환 경에서 자랐고, 그럼에도 자선 활동을 이어온 점을 판결에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헬레스타인 판사는 황씨가 뉴욕 맨해튼 허드슨강 인근에 있는 새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디트스위스 몰락시켜
황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2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대다. 미 UCLA와 카네기멜런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1990년 현대증권 뉴욕 법인에서 업무를 시작하다 헤지펀드 억만장자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에 들면서 월가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사실상 한국계 최초의 월가 ‘인사이더’ 그룹에 든 셈이다.
2001년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출범해 월가의 최대 아시아 전문 헤지펀드 중 하나로 키우며 승승장구하다 2012년 내부자거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고발을 당한 뒤 조용히 지내던 황씨는 개인 투자펀드나 다름없는 가족운용회사(패밀리오피스) 아케고스로 돌아왔다 더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은행돈을 끌어 매수한 특정 종목 주가가 오르면 황씨가 돈을 벌고,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은행이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을 통해 차액 충당을 요구하는 ‘스왑’ 계약을 여러 은행에 문어발식으로 벌인 것이다. 결국 주가 하락기에 몰려오는 마진콜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아케고스는 파산하고 은행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해당 거래는 은행이 주식을 소유하는 형태인 데다, 아케고스는 고객돈이 아닌 자기 돈으로 투자하는 패밀리오피스라 규제가 느슨해 각 은행은 물론, 규제당국도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문제를 감지한 골드만삭스가 가장 먼저 마진콜 후 매물을 던지며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특히 주가가 폭락한 뒤에 보유 매물을 던진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이 손실로 계속해서 휘청거리다 글로벌 긴축 파고와 시장의 불신을 넘지 못해 UBS에 매각되고 말았다.
검찰, 'SG사태' 라덕연에게 징역 40년 구형
황씨가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국내 시장의 눈은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 폭락을 야기한 '라덕연 사태' 재판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정도성)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라 대표에게 징역 40년을 구형했다. 또 벌금 2조3,590억원과 추징금 127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사건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가 라덕연임에도 재판 과정에서 공범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투자자들과 조직원들의 욕심을 이용해서 자신의 시세조종 조직을 키웠다"며 "사건 부당 이득이 공소장 기준으로 7,000억원을 넘는 등 규모가 막대해 중형 선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라 대표 측은 시세조종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라 대표 측 변호인은 "피고인은 매도와 매수 타이밍을 맞추지 않고 거래했으며, 실시간 매매가격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았다"며 "시세조종의 고의뿐 아니라 시세조종할 능력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피고인의 초기 동업자가 제보하며 사건이 알려졌고, 수사기관은 제보자 말만 듣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기소해 혐의 내용이나 범죄 수익 등이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라 대표는 2019년부터 올해 4월까지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는 투자자문회사를 운영하며 수천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뒤, 상장기업 8개 주식을 '통정거래(매수∙매도가를 미리 정해 놓고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해 7,37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라 대표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1월 23일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