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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방산업체, 정상회담 계기로 속속 페루 진출 급격히 성장하는 페루 방산 시장, 수출 지도 확대 기회 중국과 중남미 시장의 견고한 협력, '빈틈' 뚫을 수 있을까
현대로템, HD현대중공업 등 한국 방산 업체들이 페루에서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 페루에서 개최된 한국·페루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육·해·공 방산 협력이 강화되면서다. 시장은 K방산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남미 방산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페루 공략하는 K방산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들은 16일(현지 시간) 이뤄진 한국-페루 정상회담을 계기로 속속 페루에 중남미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우선 현대로템은 지난 16일 페루 육군과 지상무기 수출 총괄협약을 맺으면서 K2 전차와 차륜형 장갑차 수출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 양측은 이미 공급 물량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은 앞서 올해 5월에도 페루로부터 차륜형 장갑차 공급 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해양 방산 분야에서는 양국의 잠수함 공동 개발이 진행된다. HD현대중공업은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잠수함 공동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 페루 해군 맞춤형 잠수함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앞서 4월 시마조선소로부터 6,406억원 규모의 함정 4척 현지 건조 계약을 따낸 바 있다.
항공 방산에선 전투기 부품 공동 생산을 추진하기로 했다. 페루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도입을 확정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페루 국영 항공 기업 세만(SEMAN)이 KF-21 부품을 페루 현지에서 공동 생산 방식이다. 한국항공우주는 페루 공군에 KF-21과 다목적 전투기 FA-50을 패키지로 묶어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회의 땅' 중남미
국내 방산 업체는 페루 외로도 콜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칠레 등 중남미 방산 시장 전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LIG넥스원은 국내 방산업체 최초로 2011년 콜롬비아에 중남미 사무소를 열고 이듬해 대함 미사일 해성을 수출했으며, 최근에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 폭탄 'KGGB'의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는 콜롬비아, 에콰도르의 잠수함 도입 사업 수주를 위해 국내에 해당국 관계자를 초청해 생산 시설 공개, 함정 승선 등 방산 세일즈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방산업계가 중남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중남미 지역이 K방산 수출 지도를 확대하기 위한 '주요 공략지'이기 때문이다. 영국 민간 군사정보 컨설팅 업체 제인스인포메이션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남미 지상 무기 시장 규모(해상·공중 무기 제외)는 563억 달러(약 78조5,200억 원)로 10년 전인 2014년(45조3,300억 원) 대비 2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중남미 시장 성장의 배경에는 지역 특유의 '갈등'이 있다. 중남미 역내 국가들은 국토방위 목적 외로도 △테러 △마약 범죄 △난민으로 인한 국경 지역 갈등 대응 △불법조업 어선에 대한 해안선 보호 등을 위해 무기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멕시코에서는 마약 카르텔과 수백 개에 달하는 소규모 갱단에 의한 범죄와 폭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중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에서도 갱단들의 폭력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정부와 민족해방군(ELN), 무장혁명군(FARC) 간 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서는 정부군과 갱단, 무장 단체 간의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중남미 시장 선점한 中
문제는 중국이 중남미 시장에서 이미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중남미의 주요 교역국으로 자리 잡았고,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면서 미국과 더불어 중남미 역내 국가들의 주요 파트너로 급부상했다. 중국은 현재 브라질·칠레·페루·우루과이·아르헨티나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칠레·코스타리카·에콰도르·페루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남미와 중국은 방산 시장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중남미 주요국에 좌파 정권이 속속 들어서며 러시아·중국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KIEP 보고서에 따르면 2007~2016년 중남미 방산 시장에서 러시아의 점유율은 27.7%, 중국의 점유율은 4.6%에 달했다. 페루·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이 러시아 무기의 주 고객이었고, 아르헨티나·볼리비아·에콰도르 등은 중국산 무기를 수입했다.
다만 K방산에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등으로 인해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며 중남미 국가와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가 전보다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중남미 방산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기 위해서라도 한국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를 중심으로 한 정부 차원의 금융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