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삼성전자 파격 쇄신은 어디에 ‘부회장 3인방’ 자리 지켜 문책은 반도체 사업부장만
삼성전자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쇄신’을 키워드로 2025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지만 재계의 반응은 다소 미온적이다. 삼성전자의 최고 의사 결정 조직으로 불리는 사업지원TF를 비롯한 주요 보직에 여전히 이재용 회장의 측근 또는 ‘과거의 인물들’이 보직을 바꿔 앉았기 때문이다. 양대 사업부문과 핵심 사업부에 새로운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뇌부 유임, 반도체 부문만 일부 경질
27일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2명, 위촉 업무 변경 7명 등 총 9명의 2025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사였던 반도체(DS)부문 사업부장 2명을 교체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틀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격인 사업지원TF의 정현호 부회장이 그대로 유임된 가운데 이 회장의 측근 중 1명으로 꼽히는 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이 사업지원TF 담당 사장으로 이동하며 이른바 ‘서초동’의 파워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의 위기를 언급하며 대대적인 쇄신을 시사했던 이 회장의 발언에 비하면 인사의 폭이 크지 않은 셈이다.
박 사장은 그야말로 삼성의 과거를 상징하는 구조조정본부 출신이다. 재무통으로 알려진 그는 이후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전략지원팀 담당 임원을 거쳐 경영진단팀장을 맡기도 했다. 미전실의 권한이 가장 막강했던 시기의 인물이 다시 ‘미니 미전실’로 불리는 사업지원TF로 돌아온 셈이다. 박 사장은 삼성전자의 2인자로 언급되는 정 부회장과 함께 사업지원TF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뉴페이스 대신 베테랑 경영자 역할 확대
신임 사업부장을 발탁하는 대신 기존 부문장의 역할이 확대한 것도 삼성전자에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하는 목소리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종희 부회장의 경우 이번 인사를 통해 DA사업부장 겸임을 종료하고 새로운 전문경영인에 자리를 내줄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새롭게 신설된 품질혁신위원회까지 맡게 되면서 역할이 더욱 커졌다.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 역시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임하면서 7년 만에 다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이끌게 됐다.
삼성전자는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새로운 인물보다는 베테랑 경영자를 택했다. 고한승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사장)의 경우 지난 2007년 이미 삼성전략기획실 신사업팀 담당임원과 삼성전자의 신사업팀 담당 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삼성 측은 고 사장에 대해 ‘이미 그룹 차원의 신수종 사업을 일궈낸 경험과 축적된 경영 노하우’를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새로운 인물과 젊은 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파격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인사로 보는 것이 맞다”며 “1960년생인 전영현 부회장과 1962년생인 한 부회장이 여전히 양대 부문장으로 유임됐을 뿐 아니라 역할이 더 확대됐으며, 미전실 출신 인사들이 여전히 중책에 기용돼 있다는 것은 큰 틀의 변화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음 주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 단행
이번 인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만큼 경영 전면에 내세울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도 제기된다. 인적 쇄신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 마감한 것도 이 같은 시장 분위기를 방증한다. 27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43% 하락한 5만6,3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런 가운데 시장의 눈은 다음 주로 예정된 부사장 이하 정기 임원인사에 쏠리고 있다. DS부문의 경우인재 풀이 풍부한 메모리사업부의 경우 인적 쇄신이 예상된다. 이 주 중으로 D램과 낸드플래시 개발·상품기획 담당 실무 임원들이 퇴임 통보를 받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달리 파운드리사업부는 예상외로 퇴임 예정 임원이 적다는 게 삼성전자 DS부문 내부의 전언이다. 특히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공정과 수율(양품 비율)을 담당하는 주요 임원들은 대부분 유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파운드리사업부 직원은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는 업력도 짧고 임원 풀도 적다"며 "지금도 메모리에서 임원들을 데리고 오는 상황에 미세공정에 대한 이제야 조금 쌓인 노하우를 갖고 있는 임원들을 내치는 것은 회사로선 손해"라고 말했다.
이번 신설 조직에 대한 후속 인사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한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출범한 품질혁신위원회의 조직과 구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품질혁신위원회가 어떤 곳인지는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이 완료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바이오통'인 고한승 사장이 단장으로 선임된 미래사업기획단도 전임 전자 계열사 출신 단장들과 조직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