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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美에서 6조9,000억원 규모 보조금 받는다 투자 규모 줄어들며 보조금 지급액도 축소 가동 지연되던 테일러 공장, 2나노 생산 기지 도약할까
미국 정부와 삼성전자가 반도체 보조금 관련 계약을 최종적으로 체결했지만, 삼성전자에 지급될 보조금 규모가 예비거래각서(PMT) 체결 당시 발표된 수준을 밑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액이 감소하며 지원 규모 역시 자연스럽게 축소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발판 삼아 수차례 연기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소재 공장 가동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美 정부, 삼성전자 반도체 보조금 확정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미국 상무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삼성전자에 47억4,500만 달러(약 6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상무부는 “보조금은 앞으로 수년간 삼성전자가 텍사스 중부의 기존 시설을 미국 내 최첨단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위한 종합적 생태계로 전환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며 “여기에는 두 개의 첨단 로직 팹과 R&D(연구·개발) 팹, 그리고 기존 오스틴 시설의 확장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기존 반도체 생산 시설의 확장 및 테일러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따른 조치다. 반도체과학법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 및 R&D 역량 강화를 위해 제정된 전략적 법안으로, 기초과학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총 810억 달러(약 105조7,000억원)를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반도체 시장의 대표 플레이어로 꼽히는 SK하이닉스 역시 해당 법안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 보조금으로 4억 5,800만 달러(약 6,600억원)을 지급받을 예정이다.
지급 규모 예상보다 축소
주목되는 부분은 삼성전자가 수령하게 된 보조금이 지난 4월 PMT 서명 당시 발표한 64억 달러(약 9조2,000억원)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보조금 지급 규모가 축소된 것은 협상 도중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액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서명 당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4조6,000억원)를 투자하고,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의 규모와 투자 대상을 확대해 오는 2030년까지 440억 달러(약 63조8,2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삼성전자는 협상 과정에서 최종 투자 규모를 370억 달러(약 53조6,600억원) 수준까지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패키징 시설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설립 계획을 2나노 중심으로 변경하며 전반적인 투자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투자 집행을 효율화하기 위해 일부 중장기 투자 계획을 수정했다"며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규모 역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전체 투자 금액 대비 보조금 비중은 약 12.8%로 보조금 수령이 예정돼 있는 여타 기업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앞서 상무부는 미국 인텔에 최대 78억6,500만 달러(약 11조4,000억원), 대만 TSMC에 66억 달러(약 9조5,700억원), 미국 마이크론에 61억6,500만 달러(약 8조9,400억원)를 각각 지급하기로 확정했다. 전체 투자 금액 대비 보조금 비중은 TSMC가 10.2%, 인텔이 7.8%, 마이크론이 4.9% 수준이다.
테일러 공장 본격 가동 전망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통해 여러 차례 지연된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의 가동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2021년 착공한 테일러 공장은 당초 2024년 하반기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가동 시기를 2025년으로 한 차례 연기했고, 이후 올해 6월 가동을 2026년으로 재차 미뤘다.
삼성전자는 2026년 테일러 공장 로드맵에 따라 2나노미터(nm) 공정 제품 생산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 시장 관계자는 "당초 삼성전자는 해당 공장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테일러 공장에서 4나노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고, 이에 맞춰 고객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며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지연되며 가동 시점에 여유가 생긴 만큼, 전략을 전환해 2나노 최선단 공정에 힘을 싣기로 한 것"이라고 짚었다.
차후 관건은 삼성전자가 테일러 공장을 발판 삼아 2나노 시장 패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의 주요 경쟁사로 꼽히는 TSMC는 현재 탄탄한 생태계를 바탕으로 2나노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으며, 내년 4월부터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2나노 공정 시험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중 2나노 공정 시험 양산에 돌입하고, 4분기 안에 완전한 양산 체제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