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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다이아몬드 등장에 천연 다이아 시세 뚝 전문가도 특수장비 없으면 구분 못 해 작년 1.4조에서 2030년 73조원 도달 전망
'보석 중의 보석',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다이아몬드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미국에 이어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 2위를 차지하는 중국에서의 천연 다이아몬드 수요가 급감하면서 2년간 도매가가 40% 가까이 하락하는 등 투자 가치를 잃은 모습이다. 여기엔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저렴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성분으로 구성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랩다이아몬드)의 영향이 크다. 랩다이아몬드가 더 이상 천연 다이아몬드의 대체재가 아닌 주얼리 시장의 판도를 뒤집은 게임체인저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이아몬드 원석지수, 2022년 이후 하락세
25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짐니스키 다이아몬드 원석지수는 2022년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리서치는 다이아몬드 도매가격이 최근 2년 동안 40% 가까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가격 하락의 요인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뒤를 이어 글로벌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다이아몬드 시장이었다. 하지만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둔화, 취업 전쟁 등으로 혼인신고 건수가 가파르게 감소한 것이 글로벌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폴 짐니스키(Paul Zimnisky) 다이아몬드전문 애널리스트는 “단적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의 다이아몬드 수요는 벼랑에서 떨어진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며 “시장에서는 그 영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S&P글로벌과 IHS마킷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라지브 비스와스도 “다이아몬드 판매와 결혼 사이의 연관성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출현 여파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드는 랩다이아몬드 시장의 급성장도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요소다. 랩다이아몬드는 흑연에 고압 · 고온(HPHT)을 가하는 공정이나 화학 기상 증착(CVD)을 사용하는 반응(Reactor)에 의해 만들어진다. 실험실에서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에 2~4주간 탄소를 조금씩 붙여내 다이아몬드 구조로 키워냈다고 해서 랩그로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적으로 천연 원석은 지하 200km 맨틀에서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되지만 그 과정을 몇백 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성분이 자연산과 동일하고 물리적·화학적 성질도 똑같아 전문가들조차 특수장비가 없으면 감별이 쉽지 않다.
랩다이아몬드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큰 메리트는 저렴한 가격이다. 랩다이아몬드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최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상급 기준 천연 다이아몬드의 경우 1캐럿에 1,500만원 수준이지만 랩다이아몬드는 300만원 정도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에 따라 향후 이 같은 가격 격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환경이다. 랩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 생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채굴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데다, 오랫동안 노동력 착취 논란에 휩싸여 왔다. 특히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의 일부 분쟁 지역에서는 다이아몬드 암거래가 군사적 자금줄로 쓰이면서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시민들이 탄광 작업에 동원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다이아몬드는 착취당한 노동자의 피가 묻어 있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블러드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만든 랩다이아몬드는 이런 윤리적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랩다이아몬드 시장, 매년 100%씩 성장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2017년만 해도 전 세계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의 2%에 불과했던 랩다이아몬드 판매량은 지난해 18.4%로 9배 이상 폭증했다. 시장 규모도 가파른 성장세에 있다. 랩다이아몬드 시장은 2016년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미만에서 작년 80억 달러(약 11조7,000억원)까지 커졌으며 2030년엔 499억 달러(약 7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매년 100%씩 커지는 셈이다.
이에 천연 다이아몬드를 다루던 주얼리 브랜드도 앞다퉈 랩다이아몬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프레드는 지난해 블루 랩다이아몬드 컬렉션을 선보였고, 프라다 또한 시그너처 로고인 삼각형을 모티프로 ‘프라다 컷’ 랩다이아몬드를 탄생시켰다. 스와로브스키는 글로벌 브랜드 최초로 국내에 랩다이아몬드를 선보였다. 도산공원 플래그십 스토어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에이티드 다이아몬드(SCD) 파인 주얼리 컬렉션을 론칭한 것이다. 스와로브스키 CEO(최고경영자) 알렉시스 나사드(Alexis Nasard)는 “랩다이아몬드는 미래 다이아몬드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브랜드의 전략 성장 카테고리를 대표한다”고 주얼리 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예측했다.
이 같은 행보는 워치 브랜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태그호이어는 랩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카레라 플라스마(Carrera Plasma) 시계를 공개하는 파격 행보를 선보였고, 브라이틀링은 슈퍼 크로노맷 오토매틱 38 오리진스(Super Chronomat Automatic 38 Origins) 워치에 영세 광산의 금과 랩다이아몬드를 사용했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모회사 투자사인 LVMH 럭셔리 벤처스를 통해 랩다이아몬드 벤처기업에 투자했고,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브랜드 드비어스도 직접 제조에 뛰어들었다.
랩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온라인 플랫폼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랩다이아몬드 시장의 파페치라 불리는 ‘더 퓨처 록스(The Future Rocks, TFR)’가 대표적이다. TFR은 샤넬이 투자해 주목받은 쿠르베(Courbet)부터 쿠튀르 위크에 데뷔한 언세드(Unsaid), 일본의 프라이멀(Prmal), 독일의 마렌(Maren) 등 세계 각국의 지속 가능한 브랜드들을 선보이고 있다.
TFR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안토니 생(Anthony Tsang)은 다이아몬드 시장 변화와 추세를 전기차 시장과 비교했다. 그는 “15년 전만 해도 모두 테슬라를 비웃었지만, 이제는 페라리마저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