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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 104.7
블랙프라이데이 매출 전년 대비 3%↓
초과저축 소진, 빚으로 유지하는 가계 다수
내년 1월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미국에서 경기 회복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매우 낮은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국 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단기적 기대치가 경기침체 국면 못지않은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기대보다는 우려로 작용하는 가운데, 낮은 저축률과 높은 실업률 등 각종 지표도 향후 경기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 특수’ 없었다
24일(이하 현지시각) 경제분석기관 콘퍼런스보드(CB)에 따르면 미국의 12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04.7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113.8)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자, 전월(112.8) 대비 8.1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소비자신뢰지수는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6개월에 대한 경기 전망을 동시에 나타낸 지표다.
소득과 사업, 고용 환경에 대한 단기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지수 또한 한 달 사이 12포인트 넘게 떨어지면서 81.1을 기록했다. 이는 5개월 내 최저치로, CB는 기대지수가 80을 하회할 경우 가까운 미래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다나 피터슨 CB 수석연구원은 “(기대지수가) 한 달 만에 크게 하락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차기 대통령과 백악관, 차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고율 관세 정책이 소비자들의 불안을 촉발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소비 심리 위축이 미국 최대 할인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날)와 맞물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소비재 매장이 1년 중 가장 활기를 띠는 시기로, 가계의 연간 소비는 물론 기업의 연간 실적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시장조사기관 써카나에 의하면 지난달 11~16일 일반 상품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국소매연맹(NRF)은 11~12월 판매액이 약 1조 달러(약 1,405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지출 증가율은 최대 3.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1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잭 클라인헨즈 NRF 수석 연구원은 “가계의 지출 여력이 충분치 않아 소비자들이 더 신중하게 소비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저축은커녕 빚내서 생활하는 가계 상당수
가계의 지출 여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은 낮은 저축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2분기 미국의 가계 저축률은 3.3%로 1분기에 비해 0.5%p 하락했다. 3%대의 저축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역사에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주택시장에 역사적인 거품이 꼈던 2005년 1분기부터 2008년 1분기까지는 이보다 낮은 1%대 저축률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저축률이 3%대 초반이라는 것은 상당수 미국 가계가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빚을 내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팬데믹 기간 중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누적된 초과저축은 올해 초 소진된 것으로 추정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가계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3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초과저축액을 축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출이 줄어든 데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으로 여윳돈이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이런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액은 2021년 8월 2조1,000억 달러(약 2,850조원)로 정점을 찍은 후 단계적으로 줄어들었다. 월평균 700억 달러의 감소세를 보이던 초과저축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월 850억 달러로 감소 폭을 넓혔다.
문제는 이와 같은 가계 저축 감소세가 고용 시장이 견조할 땐 상관이 없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의 자금 조달 능력이 떨어져 신용카드나 개인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 시장 전반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함을 의미한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의 조사에서 미국의 11월 실업률은 4.2%를 기록하며 36개월 이동평균을 넘었다. 1950년부터 추적 관찰한 결과 실업률이 36개월 이동평균을 넘으면 반드시 경기침체로 이어진다는 게 SG의 지적이다. 앨버트 에드워즈 SG 연구원은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수익이 급감하는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된다”고 말했다.
3% 경제 성장률에도 ‘부분적 침체’ 못 피해
반면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미국 경제가 여전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낙관론 또한 제기된다. 지난 19일 미 상무부는 3분기 GDP 증가율(확정치)이 3.1%(전기 대비 연율)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잠정치(2.8%)보다 0.3%p 상향된 결과다. 이로써 미국의 GDP 증가율은 2분기 3.0% 성장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3%대의 강한 성장률을 유지했다. 직전 9개 분기로 범위를 확대해 보면 이 가운데 8개 분기가 2%를 상회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경제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다만 낮은 저축률과 높은 실업률에서 알 수 있듯 이 같은 낙관론은 단기간에 얼마든지 빛을 잃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매슈 보스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부분적 침체(selective recession)’를 겪었다”면서 “이들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저축한 돈이 줄어들어 재정적인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침체에 준하는 경제적 여건에 직면한 만큼 경기 침체는 빠른 속도로 가시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