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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론 채무불이행률 7.2%
변동금리 특성상 고금리 시장에 취약
기존 대출 차환 먹구름, 줄도산 우려
미국 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융통한 자금을 상환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위험 대출로 분류되는 레버리지론의 채무불이행률이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에 속도를 조절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레버리지론이 글로벌 금융 시장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변동금리 및 선순위 담보 대출 특징
24일(이하 현지시각)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2개월간 미국 레버리지론 시장의 채무불이행률은 7.2%로 2020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복수의 금융회사가 기업에 공통의 조건으로 자금을 대여하는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의 일종인 레버리지론은 일반적으로 변동금리 및 선순위 담보 대출의 특징을 지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차입 비용 상환에 고전하는 기업이 급증했다는 게 무디스의 설명이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채권시장 대신 대출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짚으며 “하이일드채권(무디스 기준 Ba1 이하 저신용 회사 채권) 시장의 채무불이행 비율보다 레버리지론 시장의 불이행률이 더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레버리지론은 앞서 언급했듯 변동금리로 운영되는 특성으로 인해 금리 상승기에 취약하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이에 더해 대출 기준 완화로 인한 신용위험 증가, 자산 담보 부족, 만기 불일치 등 복합적인 문제 또한 수반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이와 같은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임시방편적 해결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의 파산은 피할 수 있겠지만, 결국 더 큰 문제를 가까운 미래로 이연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SRT(중요한 위험 이전 거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의하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발행된 글로벌 SRT는 166억 달러(약 24조3,000억원)로 집계됐다. 10월 이후 발행이 급증해 연말까지 발행액은 최대 300억 달러(약 4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25%가량 급증한 수치다. SRT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대출규제 부담을 덜어내기 위험 대출채권 관련 신용위험을 여타 투자자에 전가하는 거래로, 이 과정에서 해당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은 왜곡된다. 글로벌 금융 시장의 위기가 본격화했다는 우려가 짙어지는 이유다.
‘기업가치 하락·차입금 비중 확대’ 이중고
여기에 최근 연준이 내년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신호를 보이면서 채무불이행률에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20년대 초반 연 3%대 수준이던 레버리지론 금리는 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한창이던 지난해 중반 9%대를 기록하는 등 많은 기업이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나아가 주가 하락으로 인한 기업 평가액 감소 및 차입금 비중 확대도 피할 수 없다. 금리 인상에 자극받은 투자자들이 대거 안전 자산으로 몰려가며 주식 시장의 성장세 둔화 또는 하락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같은 레버리지론이지만, 저금리 상황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하고 자금 마련 역시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향후 만기가 돌아오는 레버리지론 차환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다. 레버리지론 가운데 40% 이상이 기존 대출을 차환하기 위한 대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에 제동이 한계기업부터 시작되는 줄도산과 이들 금융상품에 투자했던 펀드들의 수익악화 등 금융시장을 흔드는 또 다른 불안 요인들 또한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반짝’ 그친 금융계 자정론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에서 촉발된 시장의 위기를 감지한 미국 금융계는 한 차례 레버리지론 발행을 조절하며 자정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기준 레버리지론 채무불이행 규모가 245억 달러(약 36조원)를 넘어서면서다. 이는 2009년과 2020년 경기 침체를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자,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과 비교해서는 훨씬 가파른 증가 속도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레버리지론 시장의 디폴트 속도가 계속 빨라지리라는 견해를 거듭 강조하고 싶다”며 “연준의 행보 또한 변동금리 부채의 노출이 많은 발행 기업이 이자 비용의 부담을 덜어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경고했다. 금융권이 신규 발행을 축소한 결과 2022년 9월 1조4,365억 달러(약 2,107조원)까지 늘어났던 레버리지론 발행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380억 달러로 급감했다. 다만 이후 이어진 금리 인하 국면에 이와 같은 자정론은 힘을 잃었고, 올해 10월 말 기준 미국의 레버리지론 발행 규모는 9,860억 달러(약 1,446조원)로 이전 수준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