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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방송서 MSNBC에 패배 ’우클릭’ 시도로 주 시청층 이탈 ‘대립각’ 세운 트럼프 취임 코 앞
수년간 '뉴스의 제국'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 매체 중 하나로 꼽혀 온 미국 CNN 방송이 최근 몇 년 간 시청률 하락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방송사 영향력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이 45%가량 폭락하며 MSNBC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는 데다 특히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진보 성향의 방송사인 CNN이 공화당 지지층과의 관계 재편을 시도하면서 주 시청자 층이 이탈하면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다.
진보 성향 CNN, 대선 시청률 경쟁에서도 밀려
25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몇 년간 감소했던 CNN의 시청률이 11월 5일 대선 이후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며 "특히 광고주가 선호하는 25~54세 연령대 시청률에서 크게 뒤처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선 이후 CNN의 프라임타임(황금 시간대) 시청자는 45% 감소한 39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추수감사절(11월 17일) 기간에는 29만7,000명으로 30만명 선까지 무너졌다. 2020년 대선 당시만 해도 CNN 프라임타임 평균 시청자 수는 180만명에 달했다.
현재 미국의 주요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로는 CNN와 함께 MSNBC와 폭스 뉴스가 꼽힌다. MSNBC는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MS)와 NBC의 합작 회사로 중도 진보적 성향의 뉴스와 논평을 방송하며 '정치의 장(The Place for Politics)'으로 불린다. 최근 시청률이 증가하며 CNN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폭스 뉴스는 보수 성향의 뉴스 채널로 시청률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2020년 대선 이후 보수 성향의 시청자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케이블 뉴스 채널 중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CNN의 경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대선 당일 시청률 경쟁에서도 같은 진보 성향의 MSNBC에게 밀렸다.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대선 당일인 지난달 5일 미 동부시각 기준 오후 8~11시 CNN의 시청자 수는 510만명으로, 600만명을 기록한 MSNBC에 크게 뒤처졌다. 같은 시간 대 폭스 뉴스의 시청자 수는 CNN의 두 배 수준인 1,030만명이었다.
대선 중 트럼프 견제 미흡, 진보 성향 시청자 이탈
CNN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는 배경으로는 전 최고영영자(CEO) 크릭스 릭트의 '우클릭' 시도가 꼽힌다. 당시 릭트 CEO는 "편향적인 보도를 줄이겠다"면서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주자의 타운홀 행사를 독점 중계했다. 당시 행사는 트럼프와 CNN 진행자가 좌담하는 방식으로 중계됐는데, 300만명이 시청한 방송에서 트럼프는 '2020년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거나 '1·6 의회 난동 사태'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방송이 끝나자 주요 시청층이었던 진보 진영에서 '왜 CNN이 트럼프에게 자기 주장을 펼칠 판을 깔아주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방송을 계기로 CNN의 전통적 시청자층으로 꼽히는 진보 성향 지지자의 이탈이 심화되면서 트럼프를 출연시킨 릭트 CEO는 타운홀 행사 한달 뒤인 지난해 6월 경질됐다. WP는 "트럼프와의 타운홀 행사를 개최한 CNN의 결정이 시청자를 떠나게 하고 많은 직원들을 불쾌하게 했다”고 전했다.
CNN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사실 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CNN는 지난 6월 트럼프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TV 토론을 주관했다. 이 TV토론에서 트럼프는 여러 차례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는데, 방송 이후 진보 진영에서 CNN이 트럼프의 발언을 정정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CNN 정치부 기자는 "CNN이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내부에 널리 퍼졌다"고 WP에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CNN과 대립각을 세워 온 트럼프가 약 한 달 후 새 임기를 시작한다. 트럼프는 지난 2020년 CNN이 대선이 조작됐다는 자신의 주장을 보도하며 이를 ‘큰 거짓말(Big Lie)’이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아 4억7500만 달러(약 6943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엔 CNN 백악관 출입기자 짐 아코스타의 출입을 정지시켰다. 두 사건 모두 법원에서 뒤집혔지만, 업계에선 트럼프가 CNN을 다시 공격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동의 1위 폭스 뉴스, 트럼프 효과로 시청률 상승
반면 트럼프 당선인에 대해 노골적인 지지를 표해 온 폭스 뉴스는 이른바 '트럼프 랠리'에 탑승하고 있는 모양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대선 이후 폭스뉴스의 일간 시청률이 40%나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폭스뉴스는 지난 6일부터 22일까지 16일간 하루 평균 20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했다. 이는 지난해 11월4일부터 1년간 하루 평균 시청자 수(140만 명)보다 60만 명 더 많은 수치다.
반면 MSNBC는 같은 기간 하루 평균 52만6,000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2022년 11월 4일부터 1년 간 동안 하루 평균 84만7,000명의 시청자를 TV 앞에 앉혔던 데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CNN 역시 지난해 11월 4일부터 1년 간 하루 평균 50만3,000명의 시청자를 모았으나, 대선 이후인 11월 6일부터 11월 22일까지 하루 평균 36만6,000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MSNBC와 CNN의 일간 시청률도 각각 38%와 27% 감소했다.
특히 지난 5일 선거 이후 온 가족이 모이는 '황금 시간대'인 저녁 케이블 뉴스 시청자 중 73%는 폭스뉴스를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MSNBC와 CNN을 선택한 시청자는 각각 16%와 11%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FT는 "시청자들이 TV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도, 폭스뉴스는 이 같은 '정치적' 성과로 올해 주가가 60%가량 상승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