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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 날아가 몸낮춘 캐나다 총리 국경 강화 약속, 관세철회 답은 못얻어 멕시코 대통령도 전화로 공조 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향해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지 나흘 만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을 찾았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도 트럼프와 긴급 통화로 달래기에 나섰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해 가려는 각국의 숨 가쁜 외교전이 일찌감치 불붙는 양상이다.
트뤼도, 마러라고 찾아가 몸 낮춰
지난달 30일(이하 현지 시간) 트뤼도 총리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트럼프 당선인과 만찬 테이블에 앉아 미소 짓는 사진과 함께 "만찬에 감사드린다. 우리가 다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글을 게재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아 트럼프 당선인과 만찬 회동을 한 다음 날이다. 기밀 유지를 위해 삼엄한 경호 아래 이뤄지는 국가 정상 만찬과 달리 이날 만찬장엔 마러라고 리조트 회원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트럼프 당선인도 같은 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트뤼도 총리와 매우 생산적인 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트뤼도 총리와 공정무역 합의,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 에너지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관세 부과가 불법 이민, 대한 협력은 물론이고 캐나다의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 등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포석이란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3시간가량 진행된 만찬 회동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와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에너지 차르’를 겸하는 더그 버검 내무장관 지명자 등 미국의 무역·불법 이민 관련 핵심 장관급 인사들이 배석했다. 캐나다 측에서는 국경 문제를 담당하는 도미닉 르블랑 공공안전장관과 케이티 텔퍼드 총리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회동에서 헬리콥터 순찰을 늘리는 등 국경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캐나다 CBC뉴스는 캐나다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맞불'에서 '협력'으로 선회
트뤼도 총리의 마러라고 방문은 일정에 없던 깜짝 방문이었다. 캐나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회동은 비밀리에 진행됐지만 트뤼도 총리의 전용기가 항공기 추적 사이트에 포착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1기’ 당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함께 트럼프 당선인과 자주 충돌했던 외국 정상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17년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 당선인이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박해를 피하려는 이들을 환영한다”며 보란 듯 포용적 이민 정책을 발표하는가 하면, 201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리셉션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환담 중 “트럼프는 기자회견을 40분이나 한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트럼프 1기는) 잃어버린 4년”이라며 각을 세웠다.
껄끄러운 관계였던 트뤼도 총리가 직접 트럼프 당선인을 찾은 건 최근 그의 지지율이 20%로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관세마저 부과하면 캐나다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단 우려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캐나다 수출의 76%, 수입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대통령도 전화 협의 “생산적”
캐나다와 함께 25% 관세 부과가 예고된 멕시코 역시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애쓰고 있다. 지난달 27일 밤 트럼프 당선인은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방금 셰인바움 대통령과 멋진 대화를 나눴다"면서 "셰인바움 대통령은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주(불법 이민)를 중단하고, 우리의 남부 국경을 효과적으로 폐쇄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는 또 미국으로의 대규모 마약 유입과 미국에서의 이 마약 소비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며 "굉장히 생산적인 대화였다"고 썼다. 그러고는 조금 뒤 다시 “멕시코는 사람들이 우리 남부 국경으로 가는 것을 막기로 했다. 효력은 지금부터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불법 침략(이민)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맙다!!”는 글을 올렸다.
셰인바움 대통령도 같은 날 오후 자신의 X에 “트럼프와 훌륭한 대화를 나눴다”며 “우리는 이주 현상에 대한 멕시코의 전략에 대해 논의했고 나는 멕시코 내에서 (문제가)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카라반이 더는 (멕시코) 북쪽 국경에 도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적었다. 카라반은 미국을 향하는 중남미 이주자 대열을 일컫는 말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조 바이든 행정부가 국경 통제를 제대로 못 해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을 ‘침략했다’고 주장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또 우리 주권의 틀 안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협력 강화에 대해서도 협의했으며, 펜타닐 소비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캠페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뜨거운 감자인 관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날 포스트에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함께 올려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