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정부·외환당국, 국민연금에 지속적으로 환 헤지 확대 요청 국민연금 해외자산 10% 환 헤지 시 63조원 규모 달러 공급 외환 스와프 확대 통한 환율 방어 방안도 논의
원화 가치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외환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의 환 헤지 확대 가능성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와 외환당국의 요청 및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라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 헤지에 나설 수 있다는 시각이다.
국민연금, 환 헤지 범위 넓힐까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은 국민연금이 환 헤지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8년 이후 해외 자산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100% 환 노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한성희 국민연금공단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환위험 관리는) 기존 5%의 전술적 외환 익스포저 관리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원화값 급락 이후 지속적으로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환 헤지 확대를 요청해 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간부 등을 한은본관으로 비공개 초청해 환 헤지 비율 확대 시행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당국 관계자는 "당국과 정부는 꾸준히 국민연금에 환 헤지 비율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연기금 환 헤지가 없다면 고환율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영향력
당국이 국민연금에 적극적인 환 헤지 협조를 구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의 큰손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 규모에 따라 환율이 유의미한 변동을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위해 달러 현물을 사는 동시에 선물환을 매도하면 이를 사들인 은행이 달러 매도·매입 포지션을 맞추기 위해 달러 현물을 시장에 내놓게 되고, 원화 가치 하락세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앞서 정부는 환율이 1,400원 선을 넘나들던 지난 2022년 11월에도 연기금에 환 헤지 비율 확대를 요청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이에 화답하듯 같은 해 10~12월 전술적 환 헤지 규모를 73억1,800만 달러(약 10조2,000억원)가량 늘렸고, 그다음 달에는 전략적 환 헤지 비율을 0%에서 10%로 상향했다. 전술적 환 헤지는 기금운용본부 재량에 따라 판단해 헤지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 전략적 환 헤지는 모든 해외 자산에 대해 일괄적으로 헤지 비율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지난 7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해외 자산에 투자한 규모는 63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4,156억9,000만 달러(약 582조원, 10월 말 기준)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현시점에 해외자산의 10%를 환 헤지하면 외환시장에 추가로 공급되는 달러는 최대 63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0월 기준 일평균 원·달러 거래량이 116억9,000만 달러(약 16조원)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규모다.
한은-국민연금 외환 스와프 확대 논의도
한편 외환당국은 환 헤지 확대를 넘어 한은과 국민연금 간의 외환 스와프 확대를 통한 환율 변동성 완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은과 국민연금은 2022년 10월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로 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이후 지난해 4월 350억 달러(약49조1,300억원), 올해 6월 500억 달러(약 70조1,900억원)로 한도를 연이어 확대해 왔다.
두 기관의 외환 스와프 거래 연장과 규모 확대는 외환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국민연금은 외환 스와프를 통해 해외 투자에 따른 환 변동 리스크를 완화하고, 외화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해외 투자를 위해 필요한 달러 자금을 외환당국 외환 스와프를 통해 한도 내에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외환 스와프 한도가 확대되면 국민연금은 기금의 해외 자산 증가 등을 반영해 환 헤지 비율을 상향할 때 헤지 수단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한은 측은 이미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규모 확대를 시사한 상태다. 이 총재는 지난달 28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달 연장되는 500억 달러 규모 국민연금 외환 스와프와 관련된 질문에 “12월 만기 전에 (확대를) 논의할 것”이라며 “몇 배까지는 아니고, 변동성에 맞춰서 상당한 정도로 늘릴 필요성은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해외로 나가는 돈이 많은 기관 중 하나”라면서 “그로 인해 과도하게 환율이 절하되거나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엔 여러 수단을 통해 변동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시그널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