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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개월 만에 철도노조 무기한 파업 돌입 코레일, 인력 투입 등 '비상 수송 체제' 운영 매년 반복되는 파업, 근본 해결책 마련해야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지난해 9월 이후 1년 3개월 만에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밀린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노조와 재정 악화로 수용이 어렵다는 코레일 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파업 기간 수도권 전철과 고속철(KTX)의 운행률을 평소 대비 70% 수준으로 유지하는 비상 수송 체제에 돌입했다.
출퇴근 시간대 전철 운행률 90% 유지
5일 코레일은 철도노조 파업에 대응해 24시간 비상 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 이용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용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대 수도권 전철과 KTX에는 동원 가능한 자원을 투입해 열차 운행 횟수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파업 시간 운용 인력은 필수 유지 인력 1만348명, 대체인력 4,513명 등 총 1만4,861명으로 평소의 60.2% 수준이다. 코레일 측은 "기관사 등 대체인력은 열차 운행 경험과 비상시 대처 능력을 갖춘 경력자로 운용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파업 예고 기간 중 평시 대비 운행률은 수도권 전철은 76%, KTX는 67%(SRT 포함 시 75%)를 유지하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각각 58%, 62% 수준으로 운행한다. 화물열차는 수출입 화물과 산업 필수품 등 긴급 화물 위주로만 수송하고, 평시 대비 운행률은 22%로 낮추기로 했다. 특히 광역 전철은 이동 수요가 적은 낮 시간대에는 운행률을 줄이고, 이용객이 많은 출근 시간대(오전 7~9시)에는 90%(1호선 및 수인분당선 95%), 퇴근 시간대(오후 6~8시)에는 85%로 운행할 계획이다.
코레일의 경우 파업으로 운행 중지된 열차 승차권 예매자에게 지난 3일 오후 6시부터 개별 문자메시지와 코레일톡 알림으로 열차 운영 취소를 안내 중이다. 이 기간 승차권을 반환 또는 변경하는 경우, 모든 열차의 위약금은 면제된다. 운행이 취소된 열차 승차권은 따로 반환 신청을 하지 않아도 일괄 전액 반환된다. 코레일 관계자는 "파업 기간에는 열차 이용 전 운행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바쁜 고객은 버스나 항공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철도노조, 성과급 등 임금 체불 해결 요구
철도노조는 5일 서울역과 부산역 등 전국 5곳에서 출정식을 열고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철도노조는 밀린 성과급 지급, 인력 감축의 중단 등을 주장해 왔고 코레일은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전날 오후 4시부터 코레일 노사는 서울본부 대강당에서 막판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 타결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비상계엄 등의 여파로 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합의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철도노조가 요구한 사항은 △정부 기준에 따른 기본급 2.5% 정액 인상 △231억원의 체불 임금 해결(노사 합의에 따른 성과급 지급) △4조 2교대 완전 전환 △신규 노선 위탁 중단 및 부족 인력 충원 △과도한 감시와 처벌 중단 △공정한 승진제도 도입 등 크게 6가지다. 대부분 노사 간에 계속 쟁점으로 논의됐던 사안으로 특히 이 가운데 성과급과 관련한 체불 임금의 문제는 오랜 기간 코레일의 노사 갈등을 촉발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코레일의 성과급 논란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재부는 공기업에 통상 임금의 개념을 반영해 수당 등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라고 권고하고 '공기업 예산운용지침' 등을 통해 에 기본급 동결하도록 했다. 코레일의 경우, 철도 파업 등의 여파로 노사 협의가 늦어져 이듬해 상여금 300%를 기본급에 산입했는데 이를 기재부가 인정하지 않으면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기본급의 80%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
코레일은 현장 인력에 대한 수당이 많은 대신 기본급 비중(임금 총액 대비 65.4%)이 낮아 30여 개 공기업 중 최하위 수준이다. 임금 개편이 다른 기관보다 1년여 지연된 탓에 낮은 성과급을 받아오던 코레일은 2018년 당시 오영식 사장이 기본급 100%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하지만 2022년 말 기재부는 감사원 지적 사항을 수용해 2026년까지 코레일의 성과급 기준을 매년 4%씩 단계적으로 감액해 다시 2017년까지 유지했던 80% 수준까지 내리기로 했다.
최근에는 기재부의 공기업 경영평가(경평) 성과급도 도마에 올랐다. 공기업은 매년 임직원에게 줄 임금 중 일정 부분을 따로 적립했다가 경평 결과에 따라 지급하는데 사실상 원래 받아야 했을 임금을 지불받는 거지만 성과급이란 명칭 탓에 마치 임금과 별개로 주는 보너스로 오해받곤 한다. 그런데 지난해 코레일은 경평에서 하위권인 D 등급을 받으면서 경평 성과급을 100%가 아닌 88%를 지급했다. 이는 직원 1인당 성과급을 12%씩 덜 지급한 것으로 코레일 전체(직원 약 3만명)로 보면 약 231억원에 해당한다.
'만성 적자' 누적, 노조 요구 수용 어려워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임금구조를 늦게 바꾼 것을 두고 계속 벌을 주는 것은 과도한 제재라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다만 코레일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당장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년간 철도 요금은 동결된 데 반해 최근 전기료가 크게 뛰면서 코레일의 적자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코레일의 총부채는 20조9,436억원 연간 기준으로 2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코레일 운임은 2011년 12월 이후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이 기간 물가상승률은 24.2%를 기록했다. 특히 열차 운행에 따른 전기 요금은 최근 3년 새 50% 이상 늘어 연간 5,000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열차 운행량은 감소했지만, 거듭된 전기료 인상에 부담할 요금만 늘고 있는 형국이다. 코레일이 올해 부담할 것으로 전망되는 전기요금은 5,814억원으로, 내년에는 600억원 늘어난 6,400억원으로 추산된다. 또 24개 운영 노선 중 19개가 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에 따른 연이자는 3,619억원, 하루 이자로 환산하면 10억원 수준이다.
코레일 측은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코레일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며 오히려 충원을 요구했다. 일례로 코레일은 올해 개통한 서해선을 비롯해 연말 개통 예정인 중앙선·동해선·중부내륙선 등 9개 노선에 필요한 인력 211명을 제대로 충원하지 못했는데, 철도노조 측은 "기재부가 1,566명의 정원 감축을 추진하는 가운데 코레일의 인력 공백이 업무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성과급 제재로 인한 임금 체불 논란과 재정 악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에 철도노조의 태업과 파업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매년 2명꼴로 철도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등 노동 조건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업무 외주화와 관련한 갈등마저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철도노조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회 이상, 총 170일간 태업했는데 이로 인해 도착이 지연된 열차 시간만 760시간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