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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등 日 지방공항, 항공유 부족 직격탄 슈퍼엔저→해외관광객 급증→항공유 수요 폭발 업황 불황 국내 정유사들엔 호재
일본 공항들이 제트유 부족 사태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슈퍼 엔저'에 해외 관광객이 몰리면서 항공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자국내 공급은 한계상황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불거진 연료난은 기존 유통구조와 안전검사 관행으로 인해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日 일부 공항, 연료 확보 난항
4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치토세공항과 구마모토공항 등 일본 일부 공항은 향후 항공편 증가에 대응할 충분한 연료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공항에 착륙해도 다시 돌아갈 항공유가 없으니 증편이나 신규 취항은 아예 엄두도 못낸다. 실제 연료 부족으로 지난해 7월에는 주당 140편의 신규 항공편 취항이 무산된 바 있다.
구마모토공항의 경우 27년 만에 취항한 대한항공 국제선이 현지 급유가 어려워 왕복 연료를 가득 채우고 운항해야 하는 실정이다. 한 공항 관계자는 "왕복 연료 탑재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크게 저하시킨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본은 한국 정유사에 SOS를 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나리타국제공항은 연료 직수입을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기존 유통업계의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다무라 아키히코 나리타 공항 운영위원장은 한국 GS칼텍스로부터 직수입을 추진했으나, 도매업체들이 '안전 우선'을 이유로 반대했다"고 말했다.
쟁점은 연료 안전검사 절차다. 국제 표준인 JIG(Joint Inspection Group) 기준은 수출 시 전체 검사가 이뤄진 경우 수입 지점의 간소화된 검사를 허용하지만, 일본 도매업체들은 더 엄격한 자체 검사를 고수하고 있다. 결국 나리타공항은 한국산 연료 직수입에는 성공했으나, 여전히 엄격한 검사 절차는 유지되고 있다.
日, 지난해 외국 관광객·지출액 모두 사상 최고
일본 공항들이 항공유 수급에 난항을 겪는 배경에는 해외 관광객 급증이 자리한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방문객은 약 3,687만 명으로 2023년보다 47.1% 증가하며 새로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들이 일본에서 지출한 돈 역시 2023년(5조3,100억 엔) 대비 53.4% 급증한 8조1,400억 엔(약 76조4,300억원)으로 역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일본 출발·도착 여객 수는 1,832만 557명으로 나타났다. 기존 최고치였던 2019년(1,560만 6,187명)보다 17.4%가량 늘어난 수치다. 9월 국제선 여객이 가장 많이 찾았던 ‘톱3’ 여행지도 모두 일본으로 나리타(39만4,600명), 간사이(33만8,640명), 후쿠오카(26만4,600명) 순이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항공사들이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던 ‘황금알’이 일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여행의 열기가 폭발적으로 번지는 데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엔저 현상이 주효했다. 일본 여행이 상대적으로 값싼 가격에 가능해지면서 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늘고 있던 여행 수요를 끌어모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항공사들도 일본행 항공을 증편하는 등 수요 대응에 빠르게 나서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항공유 시장 잡아라, 韓 정유 4社 통합공장 건립
항공연료 부족 현상의 또 다른 원인은 일본 정유사의 정유소 통폐합이다. 이 때문에 공항까지의 수송거리가 늘어난 데다 일본 내에서 운항하는 수송용 유조선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인력난이다. 일본은 국내 연료 운송 선박의 승무원을 자국민으로 제한하고 있어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공항으로의 연료 운송 트럭 기사와 급유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한국 정유업계가 항공유 시장에서 주력 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로 꼽힌다. 한국은 세계에서 항공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2023년 한 해에만 97억6,000만 달러(약 12조7,00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초대형 정제시설을 갖춘 한국 정유사들이 원유를 대량으로 들여와 저렴한 가격에 항공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미래 먹거리인 지속가능항공유(SAF)로 따지면 한국은 형편없다. 전용 생산시설 하나 없는 데다 SAF의 원재료인 폐식용유 등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미국(107개)과 캐나다(27개), 프랑스(19개), 영국(15개) 등이 SAF 전용 시설을 앞다퉈 세울 때도 지켜만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업계에선 SAF 시장이 이제 막 열린 만큼 합작공장을 시작으로 국내 정유 4사가 SAF 전용 공장 건립을 본격화하면 ‘미래 항공유’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