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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분지, 최대 51억7,000만 배럴 가스·석유 매장 가능성 최대 매장 유망구조 마귀상어에 최대 12억9,000만 배럴 추정 매장량 등 구체적인 정보 확인하는데 1년 가량 소요 예정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이 진행 중인 울릉분지에서 최대 51억7,000만 배럴의 가스·석유가 추가로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 검증 절차를 통과하면 지난해 발표된 최대 140억 배럴의 매장량에 더해 총 191억 배럴로 확대될 전망이다.
액트지오, 울릉분지 추가 유망 평가 보고서 제출
4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심해 기술평가 전문기업 액트지오(ACT-GEO)는 지난해 12월 '울릉분지 추가 유망성 평가' 용역 보고서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울릉분지 일대에서 가스·석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큰 14개의 새로운 유망구조가 발견됐다. 이번 용역을 수행한 액트지오는 지난해 6월 정부가 동해 최대 140억 배럴 매장 가능성을 발표할 때도 물리 탐사 자료를 제공한 업체로 이번 분석은 2023년 대왕고래 프로젝트 이후 추가 유망성을 평가하는 후속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새롭게 발견된 14개 유망구조의 예상 매장량은 최소 6억8,000만 배럴에서 최대 51억7,000만 배럴에 이른다. 이는 시추 없이 물리탐사와 지질 분석을 통해 측정한 탐사 자원량으로 가스는 최소 7000만 톤(t)에서 최대 4억7000만 톤, 원유는 최소 1억4,000만 배럴에서 최대 13억3,000만 배럴이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많은 자원이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유망구조는 마귀상어(Goblin shark)로 최대 12억9,000만 배럴의 가스·석유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탐사 성공률은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비슷한 20% 수준으로 예상한다.
산업부와 석유공사는 이번 탐사 결과를 국내외 전문가와 함께 신중하게 검증할 계획이다. 검증 절차는 앞서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경우, 2023년 12월 탐사 결과 제출 후 석유공사의 자체 평가와 국내외 자문단의 교차 검증에 약 6개월이 소요됐다. 2023년 5월에는 글로벌 석유회사 1곳과 비밀준수 계약을 체결해 탐사 데이터 일부를 제공하며 추가 검증을 진행했고, 같은 해 7월부터는 해외의 지질·지구물리 전문가 그룹으로 자문단을 구성해 대면회의와 서면 의견서를 통해 분석 자료를 검토했다.
대왕고래는 탐사 시추 돌입, 올해 상반기 결과 발표
앞서 정부는 2023년 첫 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경북 포항 영일만 인근의 7개 유망구조에서 35억~140억 배럴의 가스·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석유공사는 포항 앞바다에서 약 40km 떨어진 대왕고래 구조에서 탐사시추에 돌입했다. 시추 작업은 2월 5일 마무리될 예정이며 석유공사는 시추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 올해 상반기 중 1차공 시추 결과를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1차 시추가 실패하더라도 향후 수년에 걸쳐 최소 5차례의 추가 시추를 계획하고 있다.
동해 유전 탐사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지만 1년 만에 경제성을 이유로 개발이 중단됐다. 1998년 발견한 가스전의 매장량은 4,500만 배럴에 그쳤고, 2004년부터 가동한 가스전은 3년 전인 2021년 가동을 멈췄다. 그동안 석유공사는 한반도 주변 수역의 지질 조사를 수행해 왔는데 특히 동해의 대륙붕과 천해 지역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간 동해에만 27개 시추공을 시도했고, 동해 심해 탐사에 지출한 비용도 3억7,000만 달러(약 5,100억원)에 달한다.
시추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데이터는 계속 쌓였다. 석유공사는 그간 축적한 동해 심해 탐사 자료를 2023년 2월 액트지오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액트지오는 심해 평가 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기업으로 빅터 어브레이유 대표는 미국퇴적학회장과 엑슨모빌사 지질그룹장을 지낸 심해 탐사의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같은 해 12월 액트지오는 지진파 분석, 해저 지형에 대한 2D·3D 분석을 거쳐 동해 심해저에 대규모의 가스·석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국내 정유업계, 안정적 원유 공급원 확보 가능성
2023년과 2024년 액트지오가 분석한 결과를 합산하면 동해에는 총 190억 배럴 이상의 자원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다만 이는 탐사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한 예측으로 실제 시추 없이 분석된 자료로 추가 검증 및 시추 과정을 거치면서 매장량 추정치는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상업 생산에 성공할 경우 해외 원유 도입 비용 절감, 무역수지 개선, 유류세 인하 여력 추가 확보 등을 통해 국내 기름값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가 연 10억 배럴의 원유를 100% 수입하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일정량을 국산 원유로 대체할 수 있다. 운송 기간 및 비용을 줄일 여지가 생긴다는 얘기다. 중동에서 원유를 들여오면 3~4주가 걸리는데, 동해에서는 3일 내 운송할 수 있어 그만큼 해상 운송비와 보험료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유 수입 관세(약 3%)도 면제된다. 정유업계에서는 원값이 배럴당 80달러일 때, 4~5달러 정도가 운임비·관세·보험료 등으로 나가는 것으로 추정한다.
가스공사와 도시가스 사업자, LNG를 활용하는 발전 사업자(SK E&S, 포스코인터내셔널, GS에너지 등)도 원료 수급이 안정될 것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일부 발전용을 제외하고 모든 원료를 가스공사로부터 구매하고 있다. 모두 해외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통해 해상으로 들여오는 구조다. 동해 가스전은 국내 터미널과 가까워 해저 파이프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사업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LNG 운반선으로 들여오는 것보다 비용이 절감돼 전력 및 도시가스 생산원가가 낮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정보가 확인될 필요가 있다. 탐사 및 시추 이후 실제 대규모 상업 생산이 개시된다 하더라도 최소 10년 이상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국내 정유사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탄소중립 이슈에 따라 석유 수요도 줄어드는 상황인데 현 상황에서 정유업계 영향을 거론하기엔 향후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