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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원전 출력제한 23회 달해 전남 영광 한빛원전 단골 등장 ‘허수’ 재생에너지 사업장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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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기생산량 감소량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호남 지역의 경우 재생에너지 설비 급증과 맞물려 원전의 출력제한 또한 빈번하게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허수 사업자 적발을 둘러싼 정부와 업계의 대립까지 본격화하며 ‘탈원전’ 논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한빛·한울 원전, 최대 261시간 출력제한되기도
17일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력 생산량 감소분은 17만838메가와트시(MWh)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전력 감소량 8만4,314MWh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자, 약 5만7,000가구가 1년간 사용하는 전력량(가구당 한 달 전력소비량 250kWh 기준)과 맞먹는 수치다.
주요 원인으로는 원전의 출력제한이 꼽힌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전력거래소의 원전 출력제한 요청은 23회에 걸쳐 이뤄졌다. 이 기간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각 원전이 전기 공급량을 인위적으로 낮춘 횟수는 74차례에 달했다. 한빛원전과 한울원전 등 국내 주요 원전은 작게는 42MW부터 많게는 500MW까지 출력을 줄였으며, 출력제한 시간은 최대 261시간으로 파악됐다.
과거 전력거래소의 출력제한 요청은 설날과 추석 연휴 등 전력 수요가 감소하는 기간에만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2021년에는 설날과 추석 연휴 두 차례에 걸쳐 총 900MW(새울 1·2호기)의 출력제한이 이뤄졌고, 2022년에도 원전 출력제어는 설 연휴(새울 1·2호기, 500MW)와 추석 연휴(새울 1호기·신한울 1호기, 200MW)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봄철과 가을철 주말까지도 원전에 대한 잦은 출력감발 요청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3년 봄에는 5차례 걸쳐 총 3,580MW에 규모에 원전 출력제한 조치가 발동됐고, 지난해 가을 역시 세 차례의 출력감발 요청이 있었다. 이처럼 봄·가을에 집중된 원전 출력제한 조치에는 한빛 원전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한빛 원전은 전남 영광군에 위치해 있다.
더딘 사업 추진, 비용 문제 커
업계는 이를 두고 호남 지역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와 연관성이 크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2020년 6.2기가와트(GW) 수준이던 호남 지역 재생에너지 설비는 최근 11GW까지 늘어났는데, 송전망을 공유하는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가 원전의 출력제한 조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력계통 전문가는 “그동안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며 기저수요를 담당하는 발전원으로 활용된 원전들이 계통이나 수급여건에 따라 불가피하게 감발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는 전력망 이용 계약을 하고도 실제 발전 사업에 착수하지 않는 ‘전력망 알박기’ 현상을 문제 삼고 나섰다. 다수의 허수 계약자가 부지를 높은 가격에 판매할 의도로 송전망 이용 계약을 체결하고도 사업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하면 발전 사업 허가를 받고도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은 1.7GW에 달했다. 나아가 올해 상업운전 예정일이 도래하는 발전소 중 미착공 물량은 20.3GW로 집계됐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극렬한 반대, 기자재 가격 상승 탓에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후 사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몰지각한 낙인을 찍었다는 지적이다. 퇴직금을 태양광 사업에 모두 쏟아부었다는 A씨는 이와 관련해 “전기위원회로부터 태양광 발전사업 인허가를 받고 선로를 확보해 지자체에서 추가 인허가를 진행 중이나, 기자재 가격이 올라 사업 추진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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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급증한 전력 수요, 공급 안정 위해 원전이 최선”
탈원전을 둘러싼 논쟁이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투입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그 편익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먼저 산업계는 전 세계가 탈원전에서 유턴하는 추세라며 원전이 전력 생산 안정화를 위한 가장 현실적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산업계의 주장처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탈원전에 나섰던 유럽 국가들마저 최근에는 친(親)원전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2050년까지 최대 14개의 원자로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으며, 영국도 2050년까지 원자로 최대 8기를 더 설치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 전력 수요량이 급증한 만큼 에너지 자립을 위한 원전 유지는 필수라는 목소리 또한 거세다.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력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요청 1건당 필요한 전력은 2.9Wh로, 구글 1회 검색(평균 0.3Wh) 대비 10배에 가까운 수치를 보였다. 데이터센터 설립도 늘고 있다. 2022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전력은 460TWh로 한국 1년 전력소비량의 약 80% 수준을 기록했다. IEA는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사용 전력이 2022년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환경단체와 일부 전문가는 재생에너지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부 불편과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녹색연합은 “국제기구들은 기후위기 대응 핵심 수단으로 원전이 아닌 재생에너지를 선택한다”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에서는 원전의 온실가스 감축 역량 및 경제성이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원전 3기 추가 건설 등의 내용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한 바 있다. 해당 전기본에 근거해 안정적인 중장기(15년) 전력 수급을 위한 수요 예측 및 전력 설비 설계 등을 2년마다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가 원전 건설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제11차 전기본의 국회 보고는 1년 이상 연기되고 있다. 필요 이상의 논쟁이 자칫 전력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짙어지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