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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들, 말레이시아 스마트폰·자동차 시장서 '질주' 말레이시아, 美 압박에 "관세 회피에 자국 이용 말라" 경고 말레이시아 넘어 동남아 곳곳에 상륙한 中, 韓 기업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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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지 산업계 곳곳에서 중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전반적인 시장 흐름이 뒤바뀌는 양상이다.
中 테크 기업, 말레이시아 점령
23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브랜드들이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가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경쟁력 있는 가격과 적정 수준의 품질, 탄탄한 현지 화교 인프라 등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은 말레이시아 하이테크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중국 샤오미의 말레이시아 스마트폰 시장 내 점유율은 23.7%에 달한다. 이는 시장 1위인 삼성(점유율 26.0%)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점유율 3위 기업은 애플(13.8%)이며, 그 뒤로 비보(11.7%), 오포(11.5%), 아너(4.4%) 등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 전기차 시장에서는 중국 BYD가 39.3%의 점유율을 기록, 테슬라(23.6%)를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점했다. 또 다른 중국 자동차 브랜드인 체리자동차 역시 말레이시아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수입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유력 기술 기업들이 속속 말레이시아 현지 시장에 진출해 덩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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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는 '우회 수출' 우려
중국 기업들의 말레이시아 시장 내 입지가 확고해진 가운데, 말레이시아 정부의 우려는 깊어져 가고 있다. 중국이 말레이시아 시장을 미국 관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리우 친 통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 부장관은 지난해 12월 한 행사에서 "나는 지난 1년 정도 기간 여러 중국 기업에 미국 관세를 피하려고 말레이시아를 통해 그저 제품 브랜드만 바꿀 생각이라면 말레이시아에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해 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측이 직접적으로 우회 수출 관련 입장을 표명한 것은 미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동남아 각국을 상대로 관세 등 무역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5월 미국은 동남아를 통한 중국산 태양광 제품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말레이시아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생산된 태양광 패널에 대한 한시적 관세 면세 조치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해 10월 미국 상무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수입하는 태양광 패널에 관세를 적용하기로 예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산 태양광 패널에는 9.13%의 관세가 부과됐다.
中, 동남아 전반까지 영향력 키워
말레이시아의 우려에도 불구, 중국 기업들은 말레이시아는 물론 동남아 시장 전반까지 공략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하이테크 업계를 넘어 식음료 등 실생활과 밀접한 시장에서도 중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확대되는 추세다. 싱가포르 컨설팅업체 모멘텀웍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동남아 식음료 시장에서는 믹스에, 루킨커피, 하이디라오 등 약 60개에 달하는 중국 브랜드가 6,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는 2022년 1,800여 개에서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화교 인구가 많아 중국 브랜드 진출이 특히 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식음료 기업들이 동남아 공략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자국 시장의 침체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024년 상반기에만 100만 개 이상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는 전년 대비 70% 증가한 수치다. 치열한 경쟁과 경기 침체로 인해 업황 전반이 악화한 것이다. 반면 동남아 식음료 시장은 중국의 약 17% 규모에 불과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성장세가 뚜렷하다는 강점이 있다.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6개국의 외식 소비 규모는 2023년 1,270억 달러(약 182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전인 2019년 외식 소비 규모(1,157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에 '지각변동'이 발생한 가운데,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차후 점진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동남아 수출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중국의 동남아 시장 공략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속될 경우, 중국과 동남아 경제의 '커플링(동조화)' 현상이 본격화하게 된다"며 "중국과 동남아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형식이 되면 동남아 시장은 '제2의 중국'이 되고, 한국 기업들의 동남아 수출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