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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러시아 재벌도 골드카드 구매 가능” 러트닉 “골드카드 수익으로 국가 부채 감축할 것” "싼값에 영주권은 난센스", 골드카드 수백만 장 판매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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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영주권을 발급받는 대가로 500만 달러(약 71억5,300만원)를 지불해야 하는 ‘골드카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는 부유한 외국인들을 미국으로 유치하는 동시에 국가 재정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71억에 美 영주권 판매
25일(현지시간) AFP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우리는 골드 카드를 판매할 것이다. 기존의 영주권으로 그린카드가 있는데 이것은 골드카드”라며 “우리는 그 카드에 약 500만 달러의 가격을 책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의 신흥 재벌들도 골드 카드의 자격 요건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골드카드는 당신에게 그린카드의 특권을 줄 것이고, 시민권을 얻는 길이 될 것”이라며 “부유한 사람들이 이 카드를 사서 미국에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부유할 것이고, 성공할 것이고, 많은 돈을 쓰고 많은 세금을 내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골드카드는 약 2주 후부터 판매될 예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골드카드 수백만 장을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투자이민 제도는 폐지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은 기존의 투자이민(EB-5) 제도를 폐지하고 골드카드로 대체할 방침이다. EB-5는 미국에 약 90만 달러(약 12억8,000만원) 이상 투자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를 취득하면 추후 미국 시민권을 받기 위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 지난 1990년 미국 내 고용증진을 목적으로 도입된 EB-5는 정규직 10명 이상의 고용창출을 입증할 경우, 영주권을 발급하는 방식이었지만 직접 투자를 통한 고용 창출 입증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이민국(USCIS)은 1992년에 미국 내 지역센터(RC:Regional Center)의 프로젝트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고용창출이 입증되는 간접투자방식을 도입했다. 이후 이민국이 발급하는 EB-5 비자는 미국 영주권을 얻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EB-5 비자는 매년 전체 1만 명의 쿼트를 두고 국가별로 약 700명에게 발급된다.
EB-5 기본 투자금은 그동안 변화가 있었다. 이민국은 2019년 11월 22일 기점으로 1992년부터 진행해 오던 최소 투자금을 50만 달러에서 90만 달러로 인상했다. 그러나 2021년 6월 22일 미국연방법원은 미국투자이민 최소 투자금 인상법을 행정절차 하자를 이유로 무효화했다. 이에 90만 달러로 인상된 최소 투자금을 이전 50만 달러로 2021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했고, 이후 다시 90만 달러로 복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500만 달러로 높아지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EB-5 제도를 두고 싼값으로 영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며 “난센스이자, 사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골드카드로 미국의 부채를 갚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며 골드카드 판매비로 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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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도 '골드비자로' 이민자 모시기
미국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일정 규모 이상을 투자할 경우 영주권을 허용하고 있다. 포르투갈이 대표적이다. 유럽 주요국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포르투갈 정부는 이민자 유치를 위해 2012년 10월 골든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골든비자는 유럽연합(EU) 가입국 또는 유럽경제지역(EEA) 국민이 아닌 이들 가운데 포르투갈에서 사업을 위해 투자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거주 허가증이다. 한 번 발급받으면 2년간 거주할 수 있게 되며 만료 시 손쉽게 갱신도 가능하다.
포르투갈은 당초 작년 말까지만 골든비자 제도를 운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종료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골든비자 발급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결국 도입 초기보다 요건을 대폭 낮춰 골든비자 발급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부동산 투자가 필수 요건이었으나 포르투갈 예술작품이나 국가 유산을 보존하는 데 25만 유로(약 3억7,000만원)를 기부하거나 포르투갈 기업 또는 벤처캐피탈에 50만 유로(약 7억4,000만원)를 투자하면 발급된다.
골든비자의 최대 장점은 유럽 29개국이 여행·통행의 편의를 위해 체결한 '솅겐(Shengen) 조약'에 따라 주변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북미·아시아 지역에서 은퇴를 앞둔 이민자들에게 인기다. 제조업 일자리를 바탕으로 이민정책을 꾸리는 독일·프랑스 등과 차별화된 전략인 셈이다.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산업 기반이 부족한 동유럽 국가들도 이와 유사한 이민 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중동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22년 골든비자를 신설하고 이민자 모집을 개시한 아랍에미리트(UAE)는 개인 소득세가 없고 높은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단시간에 전 세계 부호들이 선호하는 이민지로 자리매김했다. UAE는 현지 부동산에 투자한 외국인에 장기체류를 허용해 정착을 유도하고 있으며, 투자금이 없더라도 세계 상위 100대 졸업생에 손쉬운 대출과 체류 기한 우대를 내걸며 인재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